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년 1월 17일~1945년 3월 26일)는 영국의 정치인으로, 제53대 영국 총리(1916~1922)를 역임하였다. 본명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이며, 사망 직전인 1945년 제1대 드와이퍼의 로이드조지 백작(1st Earl Lloyd-George of Dwyfor) 작위를 받았다. '데이비드'가 이름(first name)이고 '로이드 조지'가 성(last name)으로, '로이드'는 가운데 이름이 아니라 성의 일부이다.
1863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웨일스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어는 웨일스어였으며, 이는 영국 총리로서 유일한 사례이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한 후 외삼촌 밑에서 성장하였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법조계에서 활동하다 1890년 자유당 소속으로 하원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05년 상무원 장관으로 첫 입각하였고, 1908년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내각에서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재무장관 시절인 1909년,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포함한 이른바 '인민 예산(People's Budget)'을 제출하여 상원과의 헌법적 충돌을 초래하였고, 이는 1911년 의회법 통과로 이어져 상원의 예산 거부권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1911년 국민보험법(National Insurance Act)을 도입하여 현대 복지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1915년 군수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군수 물자 생산 체계를 개혁하였고, 1916년 전쟁부 장관을 거쳐 같은 해 12월 애스퀴스를 대신하여 총리에 취임하였다. 전시 내각을 이끌며 연합군의 승전을 주도하였고,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었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영국 대표로 참석하여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와 함께 '빅3'의 일원으로 베르사유 조약 체결을 주도하였다. 전후에는 1918년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아일랜드 자유국의 독립을 사실상 승인하였다.
1922년 터키 독립 전쟁에 대한 강경 개입(차낙 사건)과 개인적 비리 의혹, 연립 내각 파트너였던 보수당의 지지 철회로 인해 총리직에서 사임하였다. 이후 자유당이 쇠퇴하면서 재집권에는 실패하였으나, 1945년 사망할 때까지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네빌 체임벌린 총리 실각과 윈스턴 처칠의 총리 취임에 배후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제1차 세계 대전 회상록》(War Memoirs)이 있다. BBC가 2002년 실시한 '위대한 영국인' 여론조사에서 79위에 선정되었으며, 웨일스인 대상 조사에서는 8위를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