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군(德泉君, 1397년~1465년)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定宗)과 성빈 지씨(誠嬪池氏) 사이에서 태어난 열 번째 왕자이다. 휘(諱)는 이후생(李厚生)이며, 시호는 적덕(積德)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봉작명인 '덕천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계와 봉작
덕천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차남이자 제2대 국왕인 정종 이방과(李芳果)의 서출 10남이다. 생모 성빈 지씨는 고려 말 문하성 찬성사를 지낸 지윤(池奫)의 딸로, 정종의 후궁이었다. 덕천군에게는 동복 형으로 의평군 이원생, 선성군 이무생이 있었고, 동복 동생으로 임성군 이호생, 도평군 이말생이 있었다.
1444년(세종 26년) 명선대부(明善大夫) 덕원정(德原正)에 봉해졌고, 이후 덕천정(德川正), 1460년(세조 6년)에는 덕천군(德泉君)으로 봉군되었다.
생애와 행적
덕천군은 왕자의 신분이었음에도 벼슬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농사철이 되면 직접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였다. 그는 가난한 이웃을 지성으로 도왔으며, 어느 해 여름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이들을 구제하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행적 때문에 '덕을 쌓은 어른'이라는 뜻의 적덕공(積德公)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사후에는 '적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 성빈 지씨가 흰 기린의 꿈을 꾼 뒤 그를 낳았다는 태몽 설화가 전해지며, 정종이 그에게 천성이 효심이 깊고 우애가 있어 이름에 '후(厚)'자를 넣어 지었다고도 한다.
가족과 후손
정부인은 장수 이씨(長水李氏)로, 장천부원군 이종무(李從茂)의 딸이다.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으며, 아들로는 신종군 이효백, 부윤정 이효숙, 운수군 이효성, 송림군 이효창이 있다. 외손자로는 중종 반정 공신인 성희안(成希顔)이 있다.
덕천군은 전주이씨 덕천군파(德泉君派)의 파시조(派始祖)이다. 그의 후손들은 정종의 후손 가운데 가장 번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손 중에서 영의정 1명, 봉군 12명, 문과 급제자 57명 등을 배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묘소와 사우
초장지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거암리(현재 서울 송파구 일대)의 남한산성 서문 앞에 있었으나, 1974년 군용지 편입으로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 문중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사우(祠宇)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 세워졌다가 1739년(영조 15년) 현재 위치 근처로 옮겨졌다. 신도비는 그의 10대손인 조선 후기 서예가 원교 이광사(李匡師)가 짓고 썼으며, 1808년(순조 8년)에 건립되었다.
덕천군은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실록사전 등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그 존재와 행적이 충분히 확인되는 실제 역사적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