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정령(德政令, 일본어: とくせいれい)은 일본 중세인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일본의 조정 또는 막부가 채권자·금융업자에 대하여 채권 포기(채무면제)를 명한 법령을 가리키는 역사 용어이다.
개념 배경
덕정령의 바탕이 되는 '덕정'(德政)은 천인상관(天人相關) 사상에 근거하여 위정자의 교체나 재해 등에 따라 연호 개원이 이루어졌을 때 천황이 시행하는 빈민 구제 활동이나 신사(神社)의 흥행 보장, 소송 처리 등의 사회 정책을 의미하며, '신제'(新制)라고도 불렸다. 덕정령은 이러한 덕정 정책의 하나로서, 기매각지·질류지의 무상 반납, 소령이나 채권채무에 관한 소송의 원활한 처리 등을 통해 이전의 사회 질서로 복귀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이르러 재해와 전란 등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면서 조정 내에서 덕정을 통한 구심력 회복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역사적 전개
가마쿠라 시대의 덕정령은 빈궁에 시달리는 중소 고케닌(御家人) 보호라는 명목이 강했으며, 특히 1297년(에이닌 5년)에 반포된 에이닌 덕정령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몽골 침공(원나라의 일본 원정) 이후 재정난에 빠진 막부 휘하 무사들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막부 휘하 무사가 소유했거나 담보로 잡힌 땅을 원주인에게 무상 반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겐무 신정 시기인 1334년(겐무 원년)에는 고다이고 천황이 겐무 덕정령을 내렸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촌락 공동체(惣)의 발달로 덕정령을 요구하는 덕정 일꾸(一揆)가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며, 막부는 1454년의 쓰지 일꾸를 계기로 분일전(分一銭)을 발포하여 채권채무액의 10%를 막부에 납부한 분쟁 당사자에 대해 채권 존속 또는 채무 포기를 허용하는 조치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이는 막부 재정 수입 확보를 위한 측면이 있었으며, 이후 막부 재정 재건을 위해 남용되기도 하였다.
전국 시대에는 센고쿠 다이묘들이 자신의 령국 내에서 덕정령을 내린 사례가 확인되며, 이른바 '대초(代初)의 덕정'이 정착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에서의 사용
근대 이후에는 주로 채무 탕감 정책을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2014년 일본의 대부업체 J트러스트 사장 후지사와 노부요시가 당시 한국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을 '덕정령'에 비유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2019년에는 일본의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가 대학 장학금 융자의 상환 의무를 면제하는 이른바 '장학금 덕정령'을 제창하였으며, 2022년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정부 학자금 대출의 일부 탕감을 발표했을 때 일본 경제지가 이를 '덕정령'에 비유하여 보도한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