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덕안군

덕안군(德安君)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왕족으로, 본명은 이재덕(李載悳)이며 초명은 이덕주(李德周)이다. 1852년 3월 18일 경기도 양주(후일의 남양주시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사망 연도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가계와 출생

덕안군은 덕흥대원군의 12대손이며, 사도세자(장조)의 서장남인 은언군 이인의 양증손이다. 생부는 덕흥대원군 11대손이자 충정공 이홍술의 6대손인 이계(李烓)이며, 생모는 진사 김운순의 딸 안동 김씨이다. 1863년(철종 14년) 9월, 적자가 없던 익평군 이희가 병석에 눕자 문중 회의를 거쳐 익평군의 양자로 지명되었고, 이로써 은언군 가문의 후사가 되었다.

관직 활동

1865년 동몽교관에 제수되며 관직에 나섰다. 186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교리, 병조정랑, 사헌부지평, 홍문관응교, 장악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1871년에는 고종이 친히 성균관에서 실시한 응제에서 뽑혀 직부전시의 자격을 얻었으며, 고종은 이 집안에서 과거에 합격한 것을 기특하게 여겨 은언군 내외의 사판에 승지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1873년 최익현의 상소문에 연루되어 일시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었다.

사후 추증

1877년(고종 14년) 향년 26세로 별세하였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진관리(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안장되었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4대 후손에 해당하는 그는 덕안정(德安正)에 추증되었고, 1903년 다시 덕안군으로 추봉되었다.

가족

부인은 정부인 달성 서씨(1850년생)이며, 친아들 이언용(李彦鎔)이 있었으나 후사 없이 요절하였다. 이후 덕흥대원군 12대손인 이재경의 아들 완용(完鎔)을 양자로 삼아 가문을 이었다.

덕안군은 조선 후기 왕실 종친 출신의 문신으로, 생전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관직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았으나, 사후 추증을 통해 덕안군이라는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