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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산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동일한 명칭을 가진 두 곳의 산성이 각각 존재한다.

1.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대흥산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된 석축 산성이다.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 천마산(天魔山)과 성거산 일대에 위치하며, '천마산성' 또는 '성거산성'이라고도 불린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 개경(開京)을 방어하기 위한 피란성(避亂城)으로 기능하였으며, 성의 전체 둘레는 약 10.1km에 달한다. 성벽 중 2.3km 구간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7.8km 구간은 석축으로 쌓았다. 북문·남문·동문·서문·소동문(小東門)·소서문(小西門) 등 총 6개의 문이 존재하였다.

1676년(조선 숙종 2년) 대장 유혁연(柳赫然)이 중건하였으며, 당시 주위가 5,975보(步), 성첩(城堞)이 1,530개였다. 성 안에는 북창·내창·동창 등 3개의 창고가 있어 주변 6개 읍이 군량미를 분담하여 비축하였다. 또한 대흥사(大興寺)가 위치하여 승창(僧倉)과 군기고·화약고 등의 시설이 갖추어졌다. 1691년(숙종 17년)에는 「송도대흥산성조치절목(松都大興山城措置節目)」이 제정되어 개성유수가 성의 관리를 총괄하고 비상시 개성 주민이 피난하여 수비하도록 하였다. 성내를 흐르는 시냇물은 박연폭포(朴淵瀑布)를 이룬다.

2.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의 대흥산성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두곡리 산36번지 일원, 높이 139m의 대흥산 정상부에 위치한 백제 시대의 테뫼식 토축 산성이다. 둘레는 약 239m이고 내부 면적은 약 3,352㎡이며,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부정형을 띤다. 동쪽과 서쪽의 능선 진입로에 문지(門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에서는 백제 시대의 기와와 토기편이 일부 수습되었다. 사비도성의 남부 거점성인 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과 함께 방어 체계를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어 숲이 우거져 윤곽을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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