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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촉성국민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는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의 우파 계열 정치·사회운동 단체이다. 한자명은 "大韓獨立促成國民會"이며, 독립촉성국민회, 독촉국민회, 독촉 등으로 약칭되기도 하였다.

결성 배경과 성격

이 단체는 이승만 계열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 계열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안에 반대한다는 공통의 목적 아래 통합하여 발족하였다. 당시 총재는 이승만, 부총재는 김구였다. 발족 당시 채택된 선언문에 따르면, 이 단체는 "대한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며, 정당·정파를 초월한 "순연한 국민운동"임을 표방하고, 남북과 좌우의 통합을 기한다는 내용을 천명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정당이 아닌 국민운동추진단체로 규정되었으나, 실제로는 정치적 성격을 띤 조직으로서 전국의 시·도·군까지 지부조직을 확대하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대를 결성하는 등 방대한 조직망을 구축하였다.

조직 변천

발족 직후 이 단체는 내부적으로 이승만 추종계열, 김구의 한국독립당 계열, 김규식 추종계열, 신익희의 정치공작대 세력 등 다양한 계파가 공존하여 파쟁이 반복되었다. 이에 따라 간부진영의 개편이 수차례 이루어졌으며, 1946년 4월 이시영이 회장으로 선출되고, 1946년 9월에는 위원장제로 개편되어 조성환이 위원장에 선임되는 등 조직 구조와 지도부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이승만과 김구 사이에는 임시정부 수용 문제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열되었으며, 김구 계열은 임시정부봉대파로 나뉘어 별도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 단체는 이승만 계열의 우익 국민운동조직으로 변화·발전하면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데 기여하였다.

정치적 역할과 이후의 전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1948년 5·10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많은 후보자를 내세워 전체 의석의 약 27.5%인 55석을 확보하여 최다 의석의 원내 제1세력이 되었다. 이후 제헌국회에서 제헌헌법을 제정하고 총재였던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제헌국회 이후 당선 의원들의 대부분이 다른 정치 세력으로 이동하면서 국민회 소속 의원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1948년 12월 26일 이 단체는 "국민회"로 개칭하였다. 1951년 자유당이 창당된 이후에는 군소정당으로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1958년 자체 해산하면서 사실상 자유당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의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해방 직후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핵심 정치 조직으로, 이후 한국의 보수 정당 계열의 연원으로 평가된다. 다만 하나의 우파 정치 세력으로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맥락에서 다양한 연구와 평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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