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예술(land art, earthworks) 또는 대지 미술은 지구 표면 위나 표면 자체, 또는 표면 내부에 어떤 형상을 디자인하여 자연 경관 속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영어로는 '랜드 아트'(Land Art) 또는 '어스워크'(Earthworks)라고 불리며, '어스 아트'(Earth Art)라고도 한다.
어원 및 용어의 기원
'Earthworks'라는 용어는 1968년 미국의 작가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 뉴욕 드웬 화랑(Dwan Gallery)에서 '어스워크'(Earthworks)라는 이름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이름은 영국 소설가 브라이언 올디스(Brian W. Aldiss)의 생태학적 재앙을 다룬 과학소설 《어스워크》(Earthworks)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대지 예술' 또는 '대지 미술'로 번역되어 사용된다.
역사적 배경
대지 예술은 1960년대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하였다. 모더니즘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몇몇 작가들이 예술 작품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권력을 상징하는 전시 공간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벗어난다면 그 영향력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의 대지 예술가들은 갤러리의 전시 공간에 한정되어 있고 상업적 틀 안에 갇혀 있던 예술을 대자연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방출시켰다. 또한 자연 경관을 묘사하기만 하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자연 경관 자체를 끌어들여 경관 속의 미술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1968년 10월, 로버트 스미스슨이 기획한 '어스워크' 전시에는 14명의 작가(로버트 스미스슨, 로버트 모리스, 마이클 하이저, 데니스 오펜하임, 월터 드 마리아, 클래스 올덴버그 등)가 참여하였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너무 크거나 다루기 힘들었기 때문에 사진으로 전시되었으며, 이는 기존의 전시 개념에 대한 도전이자 '소유'에 대한 저항이었다.
1969년 2월, 코넬 대학교의 허버트 F. 존슨 미술관이 미국의 미술관들 중에서 처음으로 《어스 아트》(Earth Art)라는 이름으로 대지 예술을 전시하였다.
1970년대에는 경제 불황기로 대지 예술에 대한 후원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1973년 로버트 스미스슨의 사망까지 더해져 대지 예술의 방향성이 변화하였다. 이후 침체기가 회복된 후에는 점차 특정 부지에 어울리는 스케일과 환경을 고려한 형태의 대지 예술이 만들어졌으며, 공공장소와 도시 공간에서도 대지 예술이 실현되었다.
주요 특징
대지 예술 작품들은 주로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성격과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 준다. 전통적인 대지 예술가들은 주로 흙, 잔디 등의 자연물을 재료로 사용하였으나, 이후의 비전통적인 대지 예술가들은 콘크리트, 돌, 금속, 플라스틱과 같은 인공적인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대지 예술 작품들은 작품이 위치한 장소의 자연 환경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변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며, 자연 경관의 구성요소가 되어 작가와 감상자에게 장소 특정적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마이클 하이저와 로버트 스미스슨은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과 대지 예술의 연관성을 발견하였으며, 작품의 자연스러운 붕괴와 파괴는 보존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유형
대지 예술 작품은 위치, 규모, 형태, 재료, 작가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낸다. 첫째, 경관과 작품이 하나의 통합된 예술작품으로 이루어진 유형(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러닝 펜스》 등). 둘째,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구성한 유형(마이클 하이저의 《이중 부정》, 로버트 스미스슨의 《아마릴로 램프》 등). 셋째, 일시적인 자연 현상과 상호작용하여 작품이 완성되는 유형(월터 드 마리아의 《라이트닝 필드》 등)이 있다.
관련 사조
대지 예술은 196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Avant Garde, 전위 예술)의 발생과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미니멀리즘과 공통된 특징(사물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고찰, 작가와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지나, 작품의 생산 과정과 기록에 수행적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후기 미니멀리즘(Post-Minimalism)에 더 가깝다고 평가된다. 또한 작품의 결과만을 중시하지 않고 제작 의도와 과정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개념주의(Conceptual Art)와도 연결된다.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의 한 흐름으로도 분류된다.
비판
대지 예술이 발전하던 시기는 환경 보존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자연 속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대지 예술가들의 작업이 자연 환경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1970년 로버트 스미스슨의 《깨진 유리의 섬》(Island of Broken Glass) 계획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유리 조각을 살포하는 과정이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마이클 하이저의 《이중 부정》 또한 대량의 토양 굴착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표 작가 및 작품
-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나선형의 방파제》(Spiral Jetty, 1970,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솔트 호수)
-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 《이중 부정》(Double Negative, 1969-1970, 미국 네바다주)
-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라이트닝 필드》(The Lightning Field, 1977, 미국 뉴멕시코주)
-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 《러닝 펜스》(Running Fence, 1972-1976, 미국 캘리포니아주)
- 낸시 홀트(Nancy Holt): 《선 터널》(Sun Tunnels, 1973-1976, 미국 유타주)
- 리처드 롱(Richard Long): 《걸음으로 만든 선》(A Line Made by Walking, 1967, 영국)
-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 다양한 자연물을 이용한 설치 작업
- 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 《타임 라인》(Time Line, 1968)
-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어스워크》(Earthwork) 연작
영향
대지 예술은 공공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으며, 환경미술 프로젝트와 조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 전쟁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 1982)와 조지 하그리브스(George Hargreaves)의 《빅스비 공원》(Byxbee Park, 1988-1992) 등이 대지 예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