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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 (후량)

대정(大定)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존재했던 후량(後梁)의 연호이다. 후량의 초대 황제인 선제(宣帝) 소찰(蕭詧)이 사용한 연호로, 후량의 최초 연호에 해당한다.

소찰은 원래 양(梁)나라의 황족으로, 서위(西魏)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555년에 강릉(江陵)을 수도로 삼아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대정으로 건원하였다. 역사에서는 이 정권을 후량 또는 서량(西梁)이라고 부른다. 후량은 실질적으로 서위와 그 후계 국가인 북주(北周), 수(隋)의 영향 아래에 있던 괴뢰 정권이었다.

대정 연호는 555년 2월 7일(음력 1월 1일)에 건원되었으며, 562년 4월 13일(음력 윤2월 24일)에 천보(天保)로 개원되기까지 약 7년 2개월 동안 사용되었다. 대정 8년(562년)에 소찰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소규(蕭巋)가 뒤를 이어 즉위하면서 연호를 천보로 바꾸었다.

같은 시대에 서위 공제(恭帝)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원년만 칭했으며, 북주 효민제(孝閔帝)와 명제(明帝) 초기 역시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동시대에 남진(南陳)에서는 영정(永定), 천가(天嘉), 북제(北齊)에서는 천보(天保), 건명(乾明), 황건(皇建), 태녕(太寧) 등의 연호가 사용되었다. 한국의 신라에서는 개국(開國) 연호(551년~568년)가 사용되고 있었다.

한편 '대정'이라는 명칭은 후량 외에도 북주의 정제(靜帝) 우문천(宇文闡), 금나라의 세종(世宗) 완안옹(完顏雍), 원말의 진한(陳漢) 초대 황제 진우량(陳友諒) 등 다른 왕조에서도 연호로 사용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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