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수성비(大邱府修城碑)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비석(碑石)이다.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지정 현황
- 종목: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 제5호
- 수량: 1기
- 소재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만촌동, 영남제일관)
역사적 배경
대구부수성비는 조선 고종 6년(1869년) 8월에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한 김세호(金世鎬, 1806~1884)가 이듬해인 고종 7년(1870년)에 대구부성(大邱府城)을 보수한 뒤 그 사실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閔應洙)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축성하였으나, 이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되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김세호本人이 직접 지었으며, 글씨는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절충장군 최석로(崔錫魯)가 썼다.
형태
비는 네모난 받침돌(비좌, 碑座) 위에 비몸(비신, 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개석, 蓋石)을 올린 전형적인 형태이다. 비문에는 성을 보수한 공사의 경과와 내용, 그리고 공사에 유공한 자들에게 상을 내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92.0cm, 너비 74.0cm, 두께 45.5cm이며, 글씨는 해서체(楷書)로 새겨졌다.
변천 과정
원래 이 비는 대구남문(大邱南門) 밖에 있던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바로 곁에 건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1906년(광무 10년) 대구군수 박중양(朴重陽)에 의하여 대구부성이 훼철된 후, 구 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 옆) 부근에 방치되었다. 이후 1932년 영영축성비와 함께 대구향교(大邱鄕校) 경내로 옮겨졌으며, 1980년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을 재현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의의
대구부수성비는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도시 방어시설이었던 대구부성의 보수 내역을 기록한 금석문(金石文) 자료로서, 당시의 축성 기술과 행정 체계, 인물 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