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大恐慌, Great Depression)은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다. 이 시기는 높은 실업률과 빈곤, 공업 생산 및 국제 무역의 급격한 감소, 전 세계적인 은행 및 기업 파산이 특징이다.
발생 배경 및 원인
대공황은 1929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20년대 후반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로 불리는 산업 성장과 사회 발전의 시기를 겪었으나, 이 호황으로 발생한 수익의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과 같은 투기에 투자되었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은행은 최소한의 규제만 받아 무분별한 대출과 광범위한 부채가 발생했다. 1929년 들어 소비 감소가 제조업 생산량 감소와 실업 증가를 야기했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10월 28일 검은 월요일, 10월 29일 검은 화요일까지 이어진 월스트리트 대폭락이 대공황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929년 9월 381에서 1932년 7월 41까지 폭락하여 가치의 85%를 상실했다.
대공황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① 1920년대의 과도한 주식 투기와 신용 팽창, ②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 통과로 인한 국제 무역 붕괴, ③ 금본위제의 경직성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확산, ④ 연방준비제도의 부적절한 통화 정책 대응 등이 지목된다.
경과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이후에도 일시적인 회복기가 있었으나, 1930년 12월 뱅크 오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의 파산을 계기로 은행 위기가 본격화되었다. 1933년까지 미국에서는 25,000개 은행 중 9,000개가 문을 닫았고, 실업률은 25%로 치솟았으며, 농민의 약 3분의 1이 토지를 잃었다.
세계적으로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약 15% 감소했으며, 미국의 GDP는 30% 감소했다. 국제 무역은 50% 이상 감소했고, 일부 국가의 실업률은 33%까지 치솟았다.
국가별 영향
대공황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쳤으나, 그 심각성과 회복 속도는 국가별로 크게 달랐다.
- 미국: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경제에 대한 대규모 개입을 꺼렸으나,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통해 구제와 일자리 창출을 추진했다.
- 독일: 미국 대출에 크게 의존하던 독일은 실업률이 거의 30%까지 치솟았고, 정치적 극단주의가 부추겨져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는 계기가 되었다.
- 영국: 1931년 금본위제를 조기에 이탈하여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 프랑스: 다른 국가보다 늦게 영향을 받았으며, 상대적으로 높은 자급자족 수준 덕분에 피해가 덜했다.
- 일본: 다카하시 고레키요 재무대신의 적자 지출과 통화 가치 절하 정책으로 대공황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1933년에는 이미 불황에서 벗어났다.
- 소련: 세계 유일의 주요 사회주의 국가로서 국제 무역이 거의 없어 대공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회복과 종식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회복은 1933년에 시작되었다. 미국의 경우 1933년 초 회복이 시작되었으나 1929년 GNP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렸고, 1940년에도 실업률은 15% 정도였다. 1937년에는 루스벨트 행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일시적인 경기 침체가 재발하기도 했다.
경제사학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견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 대공황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전쟁이 공장 생산을 자극하여 일자리를 제공하고, 젊은 실업자들을 대거 군대로 흡수하면서 경제 회복이 본격화되었다.
명칭의 유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는 용어는 영국 경제학자 라이어널 로빈스의 1934년 저서 《The Great Depression》에서 유래되었으며,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이 용어를 대중화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