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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항포 해전

당항포 해전(唐項浦海戰)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2년(선조 25)과 1594년(선조 27)에 걸쳐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 당항리 일대의 당항포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상대로 승리한 해전이다. 제1차 당항포 해전과 제2차 당항포 해전으로 구분된다.

제1차 당항포 해전

1592년 7월 13일(음력 6월 5일)부터 이틀간 벌어졌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원균의 경상우수영 전선 3척 등 총 51척의 연합 함대가 참전하였다. 앞서 당포 해전에서 패퇴한 왜군이 당항포에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거제도 주민(귀화왜인 김모 등)으로부터 입수한 조선 수군은 당항포로 진격하였다. 이순신은 왜군을 먼 바다로 유인한 뒤 포위하여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였고, 함안군수 유숭인이 이끄는 조선 육군 기병대가 육지에서 협력하였다. 전투 결과 왜군 전선 26척이 격침 또는 소각되었고, 조선 수군은 적장 모리 무라하루(森村春)를 비롯한 여러 왜장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순신은 패잔병이 육지로 도망쳐 백성에게 피해를 줄 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전선 1척을 남겨두었고, 이를 6월 6일 새벽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이 섬멸하였다.

제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4월 23일(음력 3월 4일)에 하루 동안 벌어졌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연합 전선 124척을 지휘하여 당항포 일대에 주둔한 왜군을 공격하였다. 이순신은 함선 20척을 견내량에 배치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어영담을 공격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전라좌수영·전라우수영·경상우수영에서 선발한 공격대를 투입하였다. 이순신은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시위하는 한편 지원 및 도주로를 차단하였다. 전투 결과 왜선 31척이 모두 격파 또는 소각되었고, 패잔병들은 육지로 도주하였다.

의의

당항포 해전은 이순신의 치밀한 정보 수집, 지형 활용, 유인 전술, 퇴로 차단 등 전략적 판단이 돋보인 해전으로 평가된다. 제1차 해전은 옥포 해전, 합포·적진포 해전, 사천 해전, 당포 해전에 이어 이순신 연합 함대의 세 번째 해전이었으며, 이후 율포 해전으로 이어졌다. 제2차 해전은 정유재란 이전 전선 고착화 시기에 이루어진 대규모 해상 전투였다. 현재 경상남도 고성군에는 당항포 대첩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당항포대첩 축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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