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상관(堂上官)은 조선시대의 관직 체계에서 정3품 상계(上階) 이상의 품계 또는 그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에 오른 관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조정에서 정사(政事)를 논의할 때 당(堂) 위에 올라앉을 수 있는 관직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조선시대의 품계 체계에서 정1품부터 정3품 상계에 이르는 관품을 가진 사람을 당상관이라 하였고, 정3품 하계 이하를 당하관(堂下官)이라 하였다. 구체적으로 동반(東班, 문관)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 서반(西班, 무관)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의 품계를 가진 자가 당상관에 해당하였다. 기술관이나 환관 등에게도 드물게 제수된 경우가 있었으나, 대부분 양반이 독점하는 지위였다.
고려시대에는 2품 이상의 재추(宰樞)만이 국정 의결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그 폭을 정3품 당상관까지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당상관은 국정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최고급 관료 집단으로 기능하였다. 당상관은 경외의 양반관료를 천거할 수 있는 인사권, 소속 관료의 고과를 작성하는 포폄권(褒貶權), 군사 지휘권 등의 중요한 권한을 독점하였다.
당상관은 근무 일수에 따라 승진하는 순자법(循資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공덕과 능력에 따라 가자(加資)될 수 있었다. 또한 상피(相避)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전, 퇴직 후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녹봉을 받고 국정에 자문할 수 있는 권한 등이 주어졌다. 의복 착용이나 가마 이용에서도 당하관과 뚜렷이 구분되었다.
당상관이 되는 길은 제한적이었다. 국왕의 특지(特旨)가 있지 않는 한, 승문원정·봉상시정·통례원좌우통례·훈련원정의 네 가지 당하관직을 거친 자만이 당상관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이는 당상관의 수를 제한하여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상관의 수는 점차 증가하여 1439년(세종 21)에는 약 100여 명에 이르렀고, 세조 때의 정변과 외정으로 그 수는 더욱 급격히 늘어났다.
당상관 중에서도 2품 이상은 퇴직 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 삼대 추증(追贈), 증시(贈諡), 신도비(神道碑) 건립 등의 더 큰 특권을 누렸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차관급 이상의 고위 정무직 공무원 또는 고위공무원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용어는 조선시대의 관료 체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조선왕조실록 등 공신력 있는 자료에 널리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