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두 차례에 걸쳐 재위했는데, 첫 번째 재위(684년 ~ 690년)는 사실상 어머니 측천무후의 섭정 아래에서 이루어진 꼭두각시 황제였고, 두 번째 재위(710년 ~ 712년)는 측천무후 사후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아들 이융기에게 황위를 물려주어 당나라의 중흥기인 현종의 치세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생애
-
초기 삶과 첫 번째 재위 (662년 ~ 690년):
- 662년에 당 고종과 측천무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예왕(豫王)에 봉해졌습니다.
- 684년, 어머니 측천무후가 형인 중종(中宗) 이철(李哲)을 폐위시키자, 23세의 나이로 황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측천무후에게 있었으며, 예종은 단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 690년, 측천무후가 스스로 황제에 올라 주(周)나라를 건국하면서 예종은 황사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오랫동안 측천무후의 감시 아래에서 황태자 또는 황사로 지냈습니다.
-
황사 시절과 두 번째 재위 (690년 ~ 712년):
- 705년, 신룡정변(神龍政變)으로 측천무후가 퇴위하고 중종이 복위하면서 당나라가 재건되었으나, 중종은 무능했고 그의 황후 위씨(韋氏)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 등이 전횡을 일삼아 다시 정국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 710년, 위황후가 중종을 독살하고 어린 황제를 옹립하며 권력을 장악하려 하자, 예종의 셋째 아들인 이융기(李隆基, 훗날 현종)와 이모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정변(제2차 당롱정변)을 일으켜 위씨 일파를 제거했습니다. 이후 이융기와 태평공주의 추대에 따라 예종이 다시 황제로 복위했습니다.
- 두 번째 재위 기간 동안 예종은 주로 태평공주와 이융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치적 갈등이 심해지자, 예종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712년 아들 이융기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황(太上皇)으로 물러났습니다. 이는 중국 역사상 황제가 자발적으로 아들에게 제위를 양위한 드문 사례 중 하나입니다.
-
말년과 사망 (712년 ~ 716년):
- 태상황이 된 후에도 태평공주와 현종 간의 갈등은 계속되었으나, 현종이 태평공주 세력을 제거하면서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 716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능은 교릉(橋陵)입니다.
평가 당 예종은 재위 기간 동안 강한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 재위는 꼭두각시 황제였고, 두 번째 재위에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아들과 이모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측천무후와 위씨 일파의 전횡으로 혼란에 빠진 당나라를 다시 안정시키고, 능력 있는 아들 현종에게 순조롭게 황위를 물려줌으로써 당나라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그의 자발적인 양위는 현종의 안정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요소였습니다.
연호
- 첫 번째 재위:
- 문명(文明) (684년)
- 광택(光宅) (684년)
- 수공(垂拱) (685년 ~ 688년)
- 영창(永昌) (689년)
- 연재(延載) (690년)
- 두 번째 재위:
- 경운(景雲) (710년 ~ 711년)
- 태극(太極) (712년)
- 연화(延和) (712년)
가족 관계
- 아버지: 당 고종 이치
- 어머니: 측천무후
- 황후: 유황후(劉皇后), 도황후(竇皇后)
- 아들:
- 제2자: 이성기(李成器, 훗날 혜장태자)
- 제3자: 당 현종 이융기(李隆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