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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호

답호(褡護)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착용되었던 전통 한복의 한 종류로, 포(袍) 위에 덧입는 겉옷이다. 민소매 또는 반소매 형태이며 옆트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원 및 표기: '답호'는 한자로 '褡護', '搭護', '搭胡'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어학 학습서인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에는 '대답호(大褡胡)', '답호(褡胡)', '답홀(褡忽)'로 기록되어 있으며, '더그레'로 언해(한글로 풀이)되었다. '더그레'는 덧입는 옷의 총칭으로, 호의(號衣), 전복(戰服), 답호가 이에 포함된다.

기원 및 역사: 답호는 원(元)나라에서 기원하여 고려 후기에 한반도에 전래되었다. 그 원류는 징기스칸족의 역사서인 《집사(集史)》(1300~1304년 완성)의 미니어처에서 찾을 수 있으며, 몽고인들이 가장 많이 착용한 옷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세종 때에는 명나라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형태 변화: 초기 답호는 곧은 깃에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반소매였으며, 옷길이는 발목까지 이르고 옆선에 트임이 있었다. 넓은 섶이 가슴을 덮어 겨드랑이 밑에서 여며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소매가 없는 형태도 등장하였고, 섶이 좁아지는 변화를 겪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전복(戰服)이나 쾌자(快子)와 형태가 유사해졌으며, 순조 이후에는 답호가 착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종 25년(1888)에는 직강 김영선이 답호와 전복의 제도가 다름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실물 자료: 고려시대 답호의 실물로는 문수사(文殊寺)의 금동여래좌상(1346년 조성)의 답호와 해인사 금동비로자나불(1350~1362년 전후 추정)의 답호가 남아 있다. 이들 실물의 특징은 옆트임 안쪽에 주름잡은 별포(別布)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착용 방식: 답호는 왕과 관리들의 상복(常服) 안에 입거나 사대부가 겉옷 위에 덧입는 옷이었다. 광다회(廣多繪) 등의 실띠를 둘렀으며, 당상관 이상은 붉은색, 그 이하는 청색 계통의 띠를 사용하였다. 나장(羅將) 등의 하급 관리는 주로 철릭 위에 검은색 답호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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