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 정리(영어: Adiabatic theorem)는 양자역학의 개념으로,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는 해밀토니언 하에서 양자계가 그 순간의 고유 상태(순시 고유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정리이다. 이 정리의 원래 형태는 막스 보른과 블라디미르 포크가 1928년에 제시하였다.
내용
단열 정리에 따르면, 물리계에 가해지는 섭동이 충분히 느리게 작용하고, 해당 고윳값과 해밀토니언의 나머지 스펙트럼 사이에 간격(gap)이 존재한다면, 물리계는 순시 고유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더 간단히 말하면, 서서히 변화하는 외부 조건에 놓인 양자역학적 계는 그 함수 형태를 적응시키는 반면, 빠르게 변화하는 조건에서는 함수 형태가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여 공간적 확률 밀도가 변하지 않은 채로 유지된다.
역사적 배경
1911년 솔베이 회의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원자 진동자에 대해 E = nhν라는 양자 가설을 강연하였다. 이후 헨드릭 로런츠는 단진자의 길이를 서서히 줄이면 진자의 에너지가 부드럽게 변한다는 것을 언급하며 거시적 계에서 양자 가설의 타당성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에너지와 주파수가 모두 변하더라도 그 비율(E/ν)이 보존되므로 양자 가설을 지킬 수 있다고 답하였다. 이 논의는 단열 정리의 개념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수학적 서술
순시 고유 상태 |n(t)⟩와 그에 대응하는 에너지 E_n(t)를 갖는 서서히 변하는 해밀토니언 H(t) 하에서, 초기 상태 |ψ(0)⟩ = Σ_n c_n(0)|n(0)⟩인 양자계는 최종 상태 |ψ(t)⟩ = Σ_n c_n(t)|n(t)⟩로 진화한다. 여기서 계수 c_n(t)는 다음과 같은 위상 변화를 겪는다.
c_n(t) = c_n(0) e^{iθ_n(t)} e^{iγ_n(t)}
여기서 θ_m(t)는 동역학적 위상으로 θ_m(t) = −(1/ℏ)∫₀ᵗ E_m(t')dt'로 주어지고, γ_m(t)는 기하학적 위상으로 γ_m(t) = i∫₀ᵗ ⟨m(t')|ṁ(t')⟩dt'로 주어진다. 특히 |c_n(t)|² = |c_n(0)|²이므로, 계가 H(0)의 고유 상태에서 시작했다면 진화 동안 위상만 변한 채 H(t)의 고유 상태에 머물게 된다.
단열 정리의 증명은 시간 의존 슈뢰딩거 방정식으로부터 시작하여, 해밀토니언의 변화율이 충분히 작고 에너지 고윳값 사이에 유한한 간격이 존재한다는 단열 근사를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리만-르베그 보조정리와 그뢴발 부등식(Grönwall's inequality)을 사용하여 단열 극한에서 고유 상태가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함을 보일 수 있다.
간격 조건
보른과 포크의 원래 정의에 포함된 "간격 조건"(gap condition)은 해밀토니언의 스펙트럼이 이산적이고 비축퇴되어 있어 상태의 순서에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는 요건을 가리킨다. 1999년 J. E. 애브론과 A. 엘가트는 간격이 없는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단열 정리를 재구성하였다.
열역학의 단열 개념과의 비교
"단열"(adiabatic)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으로 열역학에서 계와 환경 사이에 열 교환이 없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역학(고전역학·양자역학)에서의 단열 개념은 열역학의 준정적 과정 개념에 더 가깝다. 열역학적 맥락에서 단열은 종종 빠른 과정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반면, 역학적 맥락에서 단열은 느린 과정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응용
단열 정리는 보른-오펜하이머 근사와 같이 결정 내 원자가 전자의 운동과 이온의 열운동을 분리하여 다루는 데 사용된다. 이를 통해 비열, 열팽창, 융해의 온도 의존성, 전기 저항의 온도 의존성, 초전도 현상의 일부 특성, 브릴루앵 산란 및 라만 산란 등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관련 개념
단열 정리는 베리 위상, 란다우-제너 공식, 보른-오펜하이머 근사, 단열 불변량 등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단열 양자 계산(Adiabatic quantum computing)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