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단군성전(檀君聖殿)은 한국의 국조(國祖)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단군을 모신 사당이라는 점에서 단군전(檀君殿), 단군사묘(檀君祠廟), 단군사우(檀君祠宇) 등의 명칭으로도 불린다.
어원 및 용어의 기원
'단군성전'은 한자 '檀(박달나무 단)', '君(임금 군)', '聖(성스러울 성)', '殿(전각 전)'으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단군을 모신 성스러운 전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단군은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하는, 우리나라를 처음 세운 건국 시조로 전해지는 신화적 인물이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의 압박 속에서 민족의식을 자각하며 단군을 국조로 숭배하려는 사상이 처음 나타난 것으로 전해지며, 한말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군 숭배 사상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역사적 배경
단군 사묘가 전국 각지에 본격적으로 건립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이다. 광복 이후 민족자주의식이 고조되면서 단군을 건국 시조로 숭배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고, 종교단체(대종교, 단군교 등)와 사회단체, 개인에 의해 전국 곳곳에 단군사묘가 세워졌다. 10월 3일은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개천절(開天節)로, 3월 15일은 단군이 승천했다는 어천절(御天節)로 지정되어 이 시기에 단군성전에서 제례가 거행된다.
대표적인 단군성전
서울 사직동 단군성전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하며, 단기 4301년(1968년) 이숙봉(李淑峰) 여사의 희사에 힘입어 이정봉, 이숙봉, 이희수 삼자매에 의해 단군성전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건물로 건립되었다. 이후 사단법인 현정회로 이관되었고, 1973년 서울특별시로부터 보호문화재로 인정받았다. 1990년대 쌍용그룹의 지원으로 개축되었다. 단군왕검의 영정과 단군상을 모시고 있으며, '백악전(百惡殿)'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매년 개천절에 제례와 기념행사가 열린다.
청주 단군성전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은적산에 위치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3·1운동 당시 독립 만세 시위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김재형(金在瀅) 선생을 주축으로 결성된 단군봉찬회가 단군을 기리는 비를 세워 건립한 곳이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84호로 지정되었다. 단군봉찬회는 매년 개천절에 개천대제(開天大祭)를 이곳에서 지내왔다. 다만 2024년 1월 26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사당이 전소되었다.
대구 단군성전 –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법니산에 위치한다. 본래 달성공원에 있던 것을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국조단군성전', '천진전(天眞殿)'이라고도 불린다. 1981년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과 초대 수성구청장 김재완이 국조 단군을 동상으로 모시며 '국조 단군 성전'이라 명명하였다.
그 외 지역 – 정읍(전북), 태백(강원), 강화(경기) 등 전국 각지에 단군성전이 존재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에 따르면 종교단체와 사회단체, 무속 단체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해 건립된 단군사묘가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
건축적 특징
단군성전은 일반적으로 목조 한식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또는 팔작지붕 형태를 띤다. 내부에는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 또는 단군상을 모시는 천단(天壇)이 설치되어 있다. 일부 단군사묘는 굴(窟), 축단(築壇), 탑비(塔碑) 등의 형태로 조성되기도 한다.
제례와 의례
단군성전에서는 대체로 개천절(10월 3일)과 어천절(3월 15일)에 제례가 거행된다. 각 사묘에 따라 음력 또는 양력으로 시행하며, 의식 절차도 유교식 향교 의례를 모방한 곳과 자체 예전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 일부 종교단체 소속 사묘에서는 교단의 교리에 따라 별도의 의식을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