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 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민족의 신화적 시조이자 고조선의 창건자로 전해지는 전설적 인물이다. 한국의 역사서인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외기》 등에서 한민족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되어 역사서에 등장한다.
명칭과 어원
단군은 '단군(檀君)' 또는 '단군(壇君)'으로 표기되며, '단군왕검(檀君王儉)',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불린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하늘 또는 신을 의미하는 몽골어 '텡그리(tenggri)'나 터키어 '탕그리(tangri)', 무당을 뜻하는 '당골' 등과 같은 어원을 갖는 말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밝음' 즉 '光明'을 의미하는 '밝달임금'이라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또한 '檀'의 '밝달'을 '시조왕'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다. 단군의 '단군'이라는 호칭은 제사장적 의미가 강하고, '왕검'은 정치적 군장의 의미가 강하다는 해석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단군신화의 내용
단군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기록은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1281년경 저술한 《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신화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제(天帝)인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하여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곰은 21일 만에 여자(웅녀)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였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고,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며, 이후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겨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한편 《제왕운기》에서는 약간 다른 내용을 전하는데, 환웅의 손녀가 약을 마셔 사람이 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왕운기》에 따르면 단군은 1,038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인식과 논쟁
단군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다. 주류 학계에서는 단군을 신화상의 인물로 간주하거나 고조선의 통치자를 일컫는 역사적 칭호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단군이 한 사람이 아니라 고조선의 누대에 걸친 국왕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도 조선시대부터 제기되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부 비주류 학계에서는 단군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1994년 평양 부근에서 단군릉을 발굴·재건한 이후 단군을 실존 인물로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남한 학계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이며, 그 이전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에는 단군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규원사화》,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 근대에 등장한 문헌에는 단군의 상세한 기록이 있으나, 이들 기록은 학계에서 위서(僞書)로 판단하여 인정되지 않고 있다.
민족사적 의의
단군은 고려 말 대몽항쟁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하여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 세종 때 평양에 단군과 동명왕을 모신 사당을 지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침탈에 대항하는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강조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로 큰 역할을 하였다.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대종교(大倧教)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개천절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며, 1962년까지는 단기(檀紀)라는 연호가 사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