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야마정(館山町, Tateyama-machi)은 일본 지바현(千葉県) 안와군(安房郡)에 과거에 존재했던 정(町)이다. 현재의 다테야마시(館山市) 중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했으며, 근대 지방자치제도하에서 성립하여 합병을 거듭하다가 소멸한 역사적 행정구역이다.
개요
다테야마정은 지바현 남부, 보소반도(房総半島) 남단부에 위치한 마을로, 도쿄만의 입구에 해당하는 다테야마만(館山湾)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다테야마성(館山城)의 성시(城下町)이자 항구 도시로 발전한 지역이 중심이 되었다.
성립과 변천
다테야마정은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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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다테야마정: 1889년(메이지 22년) 일본의 정촌제(町村制) 시행에 따라 다테야마정·가미사나구라촌(上真倉村)·시모사나구라촌(下真倉村)이 합병하여 발족하였다. 이로써 에도 시대의 마나구라촌(真倉村) 11개 촌이 다시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이게 되었다. 초대 정은 서쪽의 도요쓰촌(豊津村)과 정촌 조합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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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다테야마정: 1914년(다이쇼 3년) 초대 다테야마정이 서쪽에 인접한 도요쓰촌과 신설 합병하여 성립하였다.
이후 1933년(쇼와 8년) 북쪽에 인접한 호조정(北条町)과 신설 합병하여 다테야마호조정(館山北条町)이 발족하면서 다테야마정은 소멸하였다. 다테야마호조정은 다시 1939년(쇼와 14년) 나고정(那古町)·후나카타정(船形町) 등과 합병하여 현재의 다테야마시가 성립하면서 소멸하였다.
전사(前史)와 유래
다테야마라는 명칭은 현대의 다테야마시의 근간이 되는 지명으로, 지형과 역사적 시설이 반영된 지명이다. 「관(館)」은 성곽·저택 등의 존재를, 「산(山)」은 지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테야마 지역은 1591년(덴쇼 19년) 센고쿠 다이묘 사토미 요시야스(里見義康)가 본거지를 다테야마성으로 옮기면서 성시로 정비되었다. 이 지역은 사토미씨에 의한 축성 이전에도 성곽(城館)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이전부터 「다테야마」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토미씨가 1614년 개역된 이후에도 다테야마는 도쿄만 해상 교통의 요충지 및 상업·항만의 중심지로 계속 발전하였다.
근대 이후의 발전
1878년(메이지 11년)에는 다테야마와 도쿄 사이에 기선(汽船) 항로가 개설되어 해운 교통의 요지로서 기능하였다. 1923년(다이쇼 12년)의 관동대지진으로 정내 주택의 대부분이 붕괴·소실되는 등 심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이후 복구 과정에서 해안 융기 지대를 활용한 매립이 진행되었다. 1930년(쇼와 5년)에는 진재로 융기한 얕은 여울을 이용하여 해군 다테야마 비행장(현재 해상자위대 다테야마 항공기지)이 완공되었고, 다테야마 해군 항공대가 설치되어 군사도시로서의 성격도 띠게 되었다.
산업과 사회
다테야마정(초대 정역)에서는 상업과 어업이, 옛 도요쓰촌 지역에서는 어업과 농업이 전통적인 생업이었다. 에도 시대부터 다테야마는 도쿄로의 신선어류·말린 정어리(干鰹) 공급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폐지 시점의 인접 자치체
소멸 당시 다테야마정은 호조정, 다테노촌(館野村), 도요후사촌(豊房村), 간다촌(神戸村), 니시자키촌(西岬村)과 인접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다테야마정은 사토미씨의 성시 및 항구 도시로서의 역사적 기반 위에서 근대 행정구역으로 재편되었으나, 1933년에 소멸하여 현재의 다테야마시의 일부를 형성하게 된 과거의 행정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