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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사키번

다카사키번(高崎藩, Takasaki Domain)은 에도 시대 일본의 고즈케국(上野國, 현 군마현)에 위치했던 번으로, 도쿠가와 막부의 지배 아래에 있던 번(藩)이다. 다카사키성(高崎城)을 번청으로 하였으며, 현재 군마현 다카사키시 일대에 해당한다.

역사

1590년 오다와라 전투(小田原征伐)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 지방을 장악하면서, 그의 최측근 사천왕(四天王) 중 한 명인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가 인근 미노와성(箕輪城)에 12만 석의 영지와 함께 배치되었다. 1597년 이에야스는 나카센도(中山道)와 미쿠니 가도(三国街道)가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와다성(和田城)터에 새로운 성을 축성하도록 명령하였고, 이이 나오마사는 1598년 이곳으로 이주하여 지명을 '다카사키'로 개칭하고 미노와의 주민들을 이주시켜 성시(城下町)를 조성하였다. 이로써 다카사키번이 시작되었다.

이이 나오마사는 히코네번(彦根藩)으로 전봉되었고, 1604년 사카이 이에쓰구(酒井家次)가 5만 석으로 다카사키에 들어왔다. 이후 번은 두 차례의 마쓰다이라 가문을 거쳐 1619년 안도 시게노부(安藤重信)에게 수여되었으며, 안도 가문은 1695년까지 3대에 걸쳐 통치하였다.

1695년 오코치파 마쓰다이라 가문(大河内松平家)의 마쓰다이라 데루사다(松平輝貞)가 번주가 되었으며, 그는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도쿠가와 이에노부 아래에서 여러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여 번의 영지는 7만 5천 석으로 승격되었다. 그는 1710년 마나베 아키후사(間部詮房)에게 자리를 넘겼으나, 1716년 다시 복귀하여 이후 그의 후손들이 에도 시대 말기까지 다카사키번을 통치하였다.

막부 말기(幕末期)에 다카사키번은 덴구토의 난(天狗党の乱) 진압에 참여하였으며, 마지막 번주인 마쓰다이라 데루나(松平輝聲)는 보신 전쟁(戊辰戦争) 당시 주고 성(甲府城) 방어를 명령받았다.

1871년 7월, 폐번치현(廃藩置県)에 따라 다카사키번은 '다카사키현'이 되었으며, 이후 군마현에 통합되었다.

영지 구성

에도 시대 말기 기준으로 다카사키번의 영지는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주요 영지로는 군마군(群馬郡) 74개 촌, 우스이군(碓氷郡) 9개 촌, 미도노군(緑野郡) 2개 촌, 가타오카군(片岡郡) 3개 촌, 나와군(那波郡) 1개 촌, 간바라군(蒲原郡) 45개 촌, 니이쿠라군(新井倉郡) 5개 촌, 가이조군(海城郡) 18개 촌이 포함되었다.

번주 목록

다카사키번은 다음과 같은 다이묘 가문들이 순차적으로 통치하였다.

  • 이이 가문(井伊家, 후다이): 이이 나오마사 (1590–1600), 12만 석
  • 사카이 가문(酒井家, 후다이): 사카이 이에쓰구 (1600–1616), 5만 석
  • 도다-마쓰다이라 가문(戸田松平家, 후다이): 마쓰다이라 이에나가 (1616–1618), 2만 석
  • 후지이-마쓰다이라 가문(藤井松平家, 후다이): 마쓰다이라 노부요시 (1617–1619), 5만 석
  • 안도 가문(安藤家, 후다이): 안도 시게노부, 안도 시게나가, 안도 시게히로 (1619–1695), 5만 6천 석
  • 오코치-마쓰다이라 가문(大河内松平家, 후다이): 마쓰다이라 데루사다 (1695–1710), 5만 2천→7만 2천 석
  • 마나베 가문(間部家, 후다이): 마나베 아키후사 (1710–1717), 1만 석
  • 오코치-마쓰다이라 가문(大河内松平家, 후다이): 마쓰다이라 데루사다 이하 10대 (1717–1871), 최종 8만 2천 석

187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번의 사무라이 인구는 916가구에 3,654명이었다.

참고 자료

  • Papinot, E (1910). Historical and Geographic Dictionary of Japan. Tuttle (reprint) 1972.

이 문서는 영문 위키백과 'Takasaki Domain' 및 일본어 위키백과 '高崎藩' 항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다카사키번은 에도 시대 일본의 역사적 실체로, 학술적으로 인정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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