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씨(일본어: 橘氏 たちばな し)는 일본의 고대 및 중세 시대에 존재했던 유력한 공가(公家, 궁정 귀족) 씨족 중 하나이다. 겐페이토키쓰(源平藤橘)로 불리는 일본의 4대 명문 씨족(미나모토 씨, 다이라 씨, 후지와라 씨, 다치바나 씨) 중 하나로 손꼽혔다.
기원과 초기 역사 다치바나 씨의 기원은 천황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비다쓰 천황의 증손녀인 아가타노이누카이노 미치요(県犬養三千代)가 쇼무 천황으로부터 '다치바나'라는 성을 하사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치요의 아들인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는 나라 시대에 좌대신(左大臣)을 역임하며 쇼무 천황 시기 정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여 다치바나 씨의 기반을 다졌다. 미치요의 딸이자 쇼무 천황의 황후인 고묘 황후(光明皇后)는 후지와라 씨 출신이지만, 미치요의 또 다른 딸인 다치바나노 가치코(橘嘉智子)가 사가 천황의 황후가 되면서, 다치바나 씨는 황실과 더욱 깊은 인척 관계를 맺으며 헤이안 시대 초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헤이안 시대의 영향력과 쇠퇴 헤이안 시대 초기, 다치바나 씨는 후지와라 씨와 함께 궁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다수의 고관대작을 배출했다. 특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아 문화와 학문 분야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9세기 중반 이후, 후지와라 씨의 섭관 정치(摂関政治)가 확고하게 확립되면서 다치바나 씨를 포함한 다른 유력 공가 씨족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다치바나 씨는 주요 대신직에서 밀려나거나 후지와라 씨의 보조적인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후대와 유산 다치바나 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분파로 나뉘었으며, 일부는 무사 계급(武家)으로 전환하여 지방 호족이나 다이묘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규슈 지역의 다치바나 씨는 센고쿠 시대에 유력한 다이묘 가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공가(궁정 귀족)로서의 본류는 비록 큰 정치적 권력은 잃었지만, 메이지 유신 때까지도 궁정 귀족의 지위를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이들은 주로 학문, 예술, 궁중 의례 등 문화적인 분야에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이름은 일본 역사 속에서 유서 깊은 귀족 씨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