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노 도키타다(일본어: 平時忠, 1130년~1189년 3월 12일)는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의 공가(公家)이자 정치가이다. 간무 헤이시(桓武平氏) 다카무네류(高棟流)에 속하는 당상 헤이시(堂上平氏) 출신으로, 아버지는 다이라노 도키노부(平時信)이다. 자매로는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의 계실(継室)이 된 도키코(時子)와, 후일 고시라카와 상황(後白河上皇)의 제7황자 다카쿠라 천황(高倉天皇)을 출산한 시게코(滋子)가 있다. 시게코가 황자를 낳은 것은 도키타다의 정치적 지위 상승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도키타다는 본래 비장인(非蔵人)에서 출발하여 권대납언(権大納言)에까지 오른 인물로, 정2위(正二位)에 서임되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다카쿠라 천황의 측근 그룹과 보조를 같이하며 활동했으며, 다이라 씨 정권 내에서도 기요모리나 고시라카와 상황과 반드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간파쿠(関白)의 지위에 버금가는 실권을 행사했다는 평가에서 '평간백(平関白)'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그의 생애에는 두 차례의 유배가 있었다. 1161년, 응보(応保) 원년에 황자 옹립 문제 등과 관련하여 니조 천황(二条天皇)에 의해 해관(解官)되고 이즈모국(出雲国)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소환되어 복귀한 그는 다이라 씨 정권의 요직을 맡아 활약했으며, 견비위별당(検非違使別当)을 세 차례나 역임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도키타다는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 제1권 '토카츠(禿髪)'의 구절에서 "이 일문(一門)이 아닌 자는 모두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헤이케가 아니면 사람도 아니다(平家にあらずんば人にあらず)"라는 일본의 유명한 관용구로 알려져 있다. 다만 현대 학계에서는 이 '인비인(人非人)'이라는 표현이 "궁중에서 영달하지 못하는 사람" 정도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의미였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겐페이 전쟁(源平合戦)에서 다이라 씨 일문이 패퇴한 이후, 도키타다는 안토쿠 천황(安徳天皇)과 함께 일문과 도주(都落ち)하여 서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1185년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에서 다이라 씨가 괴멸한 이후에도 그는 살아남았고, 포로가 되어 노토국(能登国)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시점은 1189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키타다의 인물 평가에 관해, 당시 정치가 구조 가네자네(九条兼実)는 그를 "본래 광란한 사람"이라고 혹평했으며, 그의 동생 지엔(慈円)은 《구칸쇼(愚管抄)》에서 그를 "지혜로운 말만 하고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신(智臣)의 명예가 있어, 평가(平家)가 세상에 있을 때 여러 일을 보좌했다. 지금도 조정을 위하여 아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키타다의 후손 중에는 노토에서 호족으로 성장한 시가 국(時国家) 일족이 있다고 전해지며,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소행성 (4488) Tokitada도 존재한다. 다만 도키타다 개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헤이케 이야기》를 비롯한 군기물(軍記物)과 공경보임(公卿補任) 등의 사료에 분산되어 있으며, 일부 생애 초반 및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사료 간의 모순으로 인해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