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헨드리크 샤세(David Hendrik Chassé, 1765년 3월 18일 ~ 1849년 5월 2일)는 네덜란드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나폴레옹 전쟁기와 벨기에 독립 전쟁기에 활약한 장군이다.
생애 및 경력 1765년 네덜란드 스헤르펜하위셀(Scheerpenheuvel)에서 태어났다. 초기에는 오라녜나사우 공국의 군대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프랑스 혁명 전쟁 시기에 프랑스 편에 들어 바타비아 공화국 및 홀란드 왕국, 프랑스 제1제국의 군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 나폴레옹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1811년에는 프랑스 백작 작위를 받았다.
1813년 네덜란드가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오라녜나사우 공 윌럼(훗날 윌럼 1세)의 통치 하에 놓이자, 샤세는 네덜란드 군대에 합류하여 나폴레옹에 대항해 싸웠다. 1814년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백일천하 기간인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네덜란드 사단을 지휘하여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벨기에 독립 전쟁과 안트베르펀 요새 방어 1830년 벨기에 혁명이 발발하자, 샤세는 안트베르펀 요새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벨기에군이 안트베르펀 시를 장악한 후에도 그는 요새에 남아 네덜란드 국기를 내리지 않고 저항했다. 1832년 11월, 프랑스군이 벨기에를 지원하기 위해 요새를 포위 공격하자(안트베르펀 포위전), 샤세는 약 24일간 치열하게 방어전을 펼쳤으나 결국 항복하고 네덜란드로 철수했다. 이 항전으로 네덜란드 내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며, 1833년 육군 원수로 진급했다.
말년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1849년 헤이그에서 사망했다.
평가 샤세는 나폴레옹 전쟁기부터 벨기에 독립 전쟁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며 네덜란드와 프랑스 양측에서 복무한 복잡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특히 안트베르펀 요새에서의 완강한 방어전은 그의 군사적 능력과 충성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