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6년 12월 29일 ~ 1974년 1월 6일)는 멕시코의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이자 멕시코 벽화 운동(Mexican Muralism)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é Clemente Orozco)와 함께 멕시코 벽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그중 가장 막내였다.
생애
시케이로스는 멕시코 치와와(Chihuahua) 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호세 데 헤수스 알파로 시케이로스(José de Jesús Alfaro Siqueiros)이다. 4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할아버지에게 맡겨져 성장하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반항적인 성향을 지녔다.
멕시코시티의 국립 미술학교(Academia de San Carlos)에서 미술을 배웠으나, 재학 중 급진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아 아카데믹한 교육에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멕시코 혁명(Mexican Revolution, 1910~1920)에 참전하여 혁명군 디에게스(Dieguez) 장군 휘하에서 복무하였다.
1919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입체파(Cubism)의 영향을 받았고, 1921년 멕시코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대학 예비교의 벽화를 제작하려 했으나 미완성으로 끝났다. 이후 디에고 리베라, 오로스코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벽화 제작에 종사하였다.
그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이자 정치 활동가로서, 과격한 정치 운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미국에서는 공공건물에 정치 사상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하기도 하였다. 1932년에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34년에는 브라질에서 벽화를 제작하였다.
예술 세계와 기법
시케이로스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으며, 회화에 대담한 혁명 정신을 담아냈다. 그는 전통적인 벽화 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업 재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특히 피록실(pyroxylin, 질화셀룰로오스 기반의 산업용 페인트)과 실리콘 등을 회화 재료로 창안하여 사용하였고, 산업용 스프레이건, 에어브러시, 사진 투사 기법 등 최신 장비와 기술을 벽화 제작에 활용하였다.
그의 작품은 역동적인 구도, 극적인 원근법, 강렬한 색채와 거대한 스케일이 특징이며, 사회주의 이념과 멕시코의 민족 정체성을 강력하게 표현하였다.
주요 작품
- 「산업의 부흥」(La Revolución Industrial) — 멕시코시티 국립 궁전
- 「신민주주의」(La Nueva Democracia) — 멕시코시티 미술궁전
- 「아메리카 대륙의 벽화」(Mural de la América Tropical) — 로스앤젤레스
- 「인간의 행진」(The March of Humanity) — 멕시코시티 폴리포룸 시케이로스(Polyforum Siqueiros)
평가와 유산
시케이로스는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와 함께 멕시코 벽화 운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그는 예술을 사회 변혁의 도구로 보았으며, 정치적 신념과 예술적 혁신을 결합한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혁신적인 재료와 기법은 이후의 벽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74년 1월 6일 멕시코 쿠에르나바카(Cuernavaca)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