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다방(茶房)은 주로 커피, 차, 기타 비알코올 음료를 취급하는 한국의 가게이다. '찻집', '다실(茶室)', '대전(茶殿)', '수다집' 등으로도 불린다.
역사적 배경
고려·조선 시대의 관청으로서의 다방
'다방'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하였다. 고려시대의 다방은 차와 술, 과일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국가기관이었다. 고려시대의 국가적 행사에는 거의 진다의식(進茶儀式)이 행해졌는데, 이를 다방의 관원들이 맡았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이조(吏曹)의 내시부(內侍府)에 소속되었으며, 차의 공급과 외국 사신의 접대를 담당하였다. 1405년(태종 5년)에는 다방도목(茶房都目)이 제정되었고, 1447년(세종 29년)에는 사준원(司罇院)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다방은 궁중에서 약을 지어 바치는 부서의 역할도 겸하였으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차 문화가 쇠퇴하면서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는 차를 마시는 장소인 '다연원(茶淵院)' 또는 '대전원(多院)'이 존재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근대적 다방의 등장
한말(韓末) 개화기에 커피와 홍차가 보급되면서 근대적 형태의 다방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커피는 당시 '가배차', '가비차(加比茶)', '양탕(洋湯)' 등으로 불렸다. 개항 직후 외국인들에 의해 인천에 세워진 대불호텔과 스튜어드호텔의 부속 다방이 한국 다방의 선구적 형태로 평가된다. 1902년 독일계 러시아인 안토니에트 손탁(Antoinette Sontag)이 서울 정동에 지은 손탁호텔에는 서울 최초의 호텔식 다방이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적인 기능과 형태를 갖춘 다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이다. 1923년을 전후하여 명동의 '후타미(二見)'와 충무로의 '금강산'이라는 일본인 소유의 다방이 처음 설립되었으며, 특히 후타미는 식당 겸업이 아닌 다방을 전업으로 하는 근대적 다방의 원조로 평가된다. 1927년에는 영화감독 이경손(李慶孫)이 관훈동 입구에 '카카듀(Kakadu)'라는 다방을 개업하였는데, 이는 한국인 최초의 다방으로 기록된다. 1929년 종로2가 YMCA회관 근처에는 배우 김용규와 심영이 운영한 '멕시코다방'이 문을 열었다.
1930년대에는 소공동의 '낙랑파라' 등이 등장하여 상업적 다방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시인 이상(李箱)도 여러 다방의 설계와 운영에 관여하였다(식스나인, 제비, 쓰루, 무기 등). 명동의 러시아식 다방 '트로이카', 음악감상 전문 '에리사', 프랑스풍 '미모사', 독일풍 '윈', 정규음악회로 유명한 '휘가로', 서울역 앞 이별의 장소로 애용된 '돌체' 등이 다방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40년대~1950년대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설탕, 커피 등의 수입이 막히면서 다방은 쇠퇴하여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거의 폐업 상태에 이르렀다. 8·15 광복과 6·25 전쟁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기존의 다방 문화는 변화를 맞았으며, 전쟁 직후 문화시설 부족으로 다방은 그림 전시회, 문학의 밤, 영화의 밤, 출판기념회, 강습회 등이 열리는 종합예술 공간의 구실을 하였다. 1950년대의 다방은 고등실업자(룸펜)의 온상 구실을 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하였으나, 명동 지역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1970년대
1960년대 이후 다방은 지식인 계층의 남자 주인 대신 여자 주인이 얼굴마담, 레지, 카운터, 주방장 등을 두고 경영하는 체제로 변모하였다. 1970년대 동서식품의 인스턴트 커피 생산이 시작되면서 가정에서도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다방은 점차 고급화·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1970년대는 젊은 층 위주의 DJ가 있는 음악 전문 다방이 성행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사무실이 없는 업주가 다방 전화를 업무용으로 활용하고 레지(계산원)를 비서처럼 사용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1980년대~1990년대
1980년대에는 차 값의 자율화와 함께 차 종류가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운 실내 장식을 갖춘 다방이 많이 등장하였다. '난다랑(蘭茶廊)'을 필두로 한 체인점 다방이 생겨났고, '○○화랑'이라는 상호명이 유행하였다. 야간 통행금지제도가 폐지되면서 대도시에 심야다방이 많이 나타났다. 1990년대에는 커피자판기의 보급, 음료의 고급화, 고급 커피전문점의 증가로 다방은 점차 쇠퇴하였다. 1997년 2월 '대한다방업중앙회'는 '대한휴게실업중앙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편 1980년대 후반부터 일부 다방에서 출장 매춘을 알선하는 이른바 '티켓다방'이 지방을 중심으로 성행하면서 다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났다.
현황
광복 이후 매년 증가하던 다방의 수는 1975년 허가지역제한이 해제된 이후 급증하여 1992년 약 45,000개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약 33,000개가 남아 있었으며, IMF 사태 이후에는 약 9,000개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스타벅스 등 외국계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다방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카페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2017년 기준 전국 커피 전문점의 수는 약 92,000개로 증가한 반면, '다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업소는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