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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무라 다쓰아키

다무라 다쓰아키(田村建顕, Tamura Tatsuaki)는 일본 에도 시대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다이묘(大名)이다. 육오국(陸奥国) 이와누마 번(岩沼藩)의 제2대 번주이자, 다무라 가문의 이치노세키 번(一関藩) 초대 번주이다.

생애 1656년 6월 30일(명력 2년 5월 8일), 센다이 번(仙台藩)의 일문(一門)인 다무라 무네요시(田村宗良)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아명은 지카쓰(千勝)이며, 초명은 무네나가(宗永)였다. 1660년 아버지 무네요시가 이와누마 번 3만 석의 다이묘로 책봉되면서 세자(世子)가 되었다. 1664년 원복(元服)하여 무네나가라 칭하였고, 같은 해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徳川家綱)를 알현하였다.

1681년(엔보 9년), 이와누마에서 이치노세키로 전봉(転封)되었다. 1691년(겐로쿠 4년) 오쿠즈메슈(奥詰衆)에 발탁되어 후다이격(譜代格)이 되었고, 1692년(겐로쿠 5년)에는 조샤반(奏者番)을 명받았다. 같은 해 12월 그믐날, 이름을 다쓰아키(建顕)로 개명하였다. 1693년(겐로쿠 6년)에는 성주격(城主格)이 되었다. 관위는 종5위하 우쿄다이부(右京大夫), 이나바노카미(因幡守)에 이르렀다. 1708년 2월 18일(호에이 5년 1월 27일), 53세로 사망하였다.

겐로쿠 아코 사건(元禄赤穂事件) 1701년(겐로쿠 14년) 3월 14일, 하리마국 아코 번주 아사노 나가노리(浅野長矩)가 에도 성 내에서 칼부림 사건을 일으켜 당일 할복을 명받았다. 이때 이치노세키 번 다무라 가문이 사건 후 나가노리의 신병을 인계받도록 명령받았으며, 당일 저녁 시바(芝)의 이치노세키 번저(藩邸)에 나가노리가 호송되어 와, 곧바로 정원에서 할복이 집행되었다. 이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다쓰아키의 대응이 냉랭했다는 평가가 남아 있으며, 나가노리가 입고 있던 대문(大紋)을 벗기고 수용된 방의 장지를 못으로 고정하는 등 엄격한 처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정원에서 돗자리 위에 할복하게 하고, 가신이 가문 전래의 명도를 가져오자 격노하는 등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인물 및 문화 어려서부터 한학(漢学) 외에도 서예, 회화, 다도, 노(能), 와카(和歌), 고토(箏)를 익힌 교양인으로 알려져 있다. 에도 초기의 가집(歌集) 『마사키노카즈라(正木のかずら)』에는 다이묘로서는 12수가 입선되어 있다. 당시 시각(時刻)을 알리는 북(時の太鼓)은 황거(皇居)나 극히 일부 다이묘만 허용되었으나, 다쓰아키가 막부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 이치노세키 성하(城下)에서는 작은 번(藩)이면서도 북으로 시각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유품으로는 『에이햐쿠슈 와카(詠百首和歌)』, 동산 천황(東山天皇)의 칙점(勅点)을 받은 자필 와카와 『만요슈(万葉集)』 등의 자필 그림이 들어간 사본인 『다무라 다쓰아키 데카가미(田村建顕手鑑)』 등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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