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아랍어: درعا, Darʿā)는 시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요르단 국경에서 북쪽으로 약 13km 떨어져 있다. 하우란(Hauran) 지역의 다라주(Daraa Governorate) 주도이며, 다마스쿠스에서 남쪽으로 약 90km 지점에 위치한 다마스쿠스-암만 고속도로 상에 있어 여행객의 주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해발 435m에 위치하며, 2004년 인구 조사 기준 인구는 약 97,969명이다. 주민은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다.
다라는 청동기 시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도시이다. 이집트 신왕국 투트모세 3세(기원전 1490~1436년) 통치 시기의 기록에는 '아타라아(Atharaa)'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에드레이(Edrei)'로 불리며, 바산(Bashan) 지역의 수도이자 이스라엘 민족이 옥(Og)을 물리친 전투가 벌어진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셀레우코스 제국과 로마 제국 시대(106년 이후)에는 '아드라아(Adraa)'로 알려졌으며,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속주에 편입되었다. 3세기경에는 자치 도시(폴리스)의 지위를 획득했으며, 기독교 교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614년 사산 제국이 비잔티움-사산 전쟁 중 아드라아를 약탈했으나 주민은 살려주었다.
초기 이슬람 시대에는 '아드리아트(Adhri'at)'로 알려졌으며, 634년 라시둔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후 라시둔 칼리파국과 우마이야 칼리파국 시대 동안 알-바타니야 하위 지구의 수도 역할을 했으며, 다마스쿠스와 메디나를 잇는 하즈(Hajj) 대상단의 전략적 기착지이자 중앙 시리아로 가는 관문이었다. 906년 카르마트파의 습격으로 주민이 학살당했다. 십자군이 1118년 일시적으로 점령하기도 했으며, 맘루크 술탄국과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도 도시의 중요성은 유지되었다.
헤자즈 철도 건설 이후 다라는 철도의 주요 교차점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T. E. 로런스(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이끄는 아랍 반군이 오스만 군대로부터 다라를 점령하였다(1918년).
다라는 2011년 시리아 혁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2011년 3월, 학교 담벼락에 반정부 낙서를 한 10대 청소년들이 체포되고 고문을 당한 사건이 촉발 계기가 되어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고, 이는 시리아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2011년 4월 시리아군의 다라 포위전 이후 도시는 내전의 주요 격전지 중 하나가 되었다. 2018년 7월 시리아군이 도시를 재탈환했으나, 2024년 12월 지역 반군이 공세를 펼쳐 다라주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도시는 북부의 다라 알-마하타(Daraa al-Mahatta)와 남부의 다라 알-발라드(Daraa al-Balad)로 구분된다. 다라 주변 기후는 쾨펜 기후 구분상 한랭 스텝 기후(BSk)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