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전투(多大浦戰鬪)는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도 동래부 다대포(현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명령함에 따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제1군 1만 8,700여 명과 병선 700여 척이 1592년 음력 4월 13일 동래부 영도에 상륙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배경
다대포는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해안 요충지였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수군 만호영이 설치되었고, 성종 21년(1490년)에는 높이 약 3.9m, 둘레 약 5.4km의 다대포성이 축조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다대포진의 수장은 다대포첨사 윤흥신(尹興信)이었다.
전투 경과
1592년 음력 4월 14일, 일본군은 먼저 부산포진을 함락시켰다. 이때 상급 지휘관인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은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같은 날 부산진에서 다대포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서평진(西平鎭)이 일본군에게 점령되었고, 이후 다대진 군사들이 다대진성을 포위한 일본군을 일시적으로 격퇴하는 소규모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튿날인 음력 4월 15일, 일본군이 다시 대규모 병력으로 다대포를 공격하자, 다대포첨사 윤흥신은 전력을 다해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윤흥신은 동생 윤흥제(尹興悌)와 함께 다대포진 객사 동쪽 연못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다대포성은 함락되었으며, 조선군은 병력·식량·무기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과
다대진과 부산진이 함락된 후,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은 동래성 방향으로 진격하였다. 다대포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해안 방어선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전투 중 하나로, 조선 수군의 취약한 방어 체계와 지휘 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현재 부산 다대동 일대에는 이 전투와 관련된 유적지와 충렬사 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