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마사유키(谷正之, Tani Masayuki, 1889년 2월 9일~1962년 10월 16일)는 일본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역임한 인물이다.
생애 및 경력
다니 마사유키는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출생하였다.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13년 외무성에 입성하여 외교관으로서 경력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프랑스(1918~1923), 미국(1927~1930), 만주국(1933~1936) 주재 대사관 등에서 근무하였다.
1930년 외무성 아시아국장에 임명되었고, 1936년에는 오스트리아 겸 헝가리 공사를 지냈다. 1939년 9월 노무라 기치사부로 외무대신 아래에서 외무차관에 취임하였다.
1941년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정보국 총재로 임명되었고, 1942년 9월 17일에는 외무대신에 취임하여 1943년 4월 21일까지 재임하였다. 외무대신 재임 기간 동안 일본은 독일과 소련 간의 단독 강화를 추진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장려하였다. 외무성 내부 관료들의 반감으로 인하여 그의 외무대신 임기는 비교적 짧았으며, 1943년 4월 시게미쓰 마모루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후에는 시게미쓰가 맡았던 직책을 이어받아 중국 난징의 왕징웨이 정권 주재 일본 대사로 부임하여 1945년까지 재임하였다.
전후 활동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다니 마사유키는 전쟁 범죄 용의자로 구금되었으나 1948년 12월까지 수감된 뒤 불기소 처리되었다. 이후 외교관으로 복귀하여 1956년 3월부터 1957년 4월까지 전후 세 번째 주미 일본 대사로 재임하였다. 또한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일본 대표단으로 참석하였고, 유엔 총회 대표를 지내기도 하였다.
평가 및 역사적 맥락
다니 마사유키는 전시기 일본의 대외 정책 수행에 관여한 직업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전후에는 전범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기소되지 않았다. 그의 경력은 일본 제국의 전쟁 수행기와 전후 재건기의 외교 정책을 아우르는 인물로 기록된다.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에 대해서는 일부 자료 간에 차이가 있으며, 출생일(1889년 2월 9일 또는 9월 2일)과 사망일(1962년 10월 16일 또는 10월 26일)에 대해서도 자료에 따라 표기가 상이하다. 이는 관련 사료의 기록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