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2세(러시아어: Николай II, 1868년 5월 18일 ~ 1918년 7월 17일)는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재위: 1894년 11월 1일 ~ 1917년 3월 15일)이자 폴란드의 차르, 핀란드의 대공이다. 본명은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러시아어: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Рома́нов)이며, 애칭은 니키였다.
생애와 즉위 알렉산드르 3세와 덴마크의 다우마(마리아 표도로브나)의 장남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알렉산드르 2세의 장손이자 표트르 1세의 7대손에 해당한다. 1894년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의 사망으로 즉위하였으며, 같은 해 헤센 대공국의 알릭스 공주(러시아식 이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와 결혼하였다. 1896년 5월 26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였으나, 대관식 축제 기간 중 호딘카 들판에서 군중 압사 사고(1,389명 사망)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통치와 주요 사건 니콜라이 2세는 전제 군주제를 고수하며 정치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1904년~1905년에는 일본 제국과의 러일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1905년 1월 22일(피의 일요일)에는 평화적인 청원 행진을 벌이던 노동자들에게 군대가 발포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1905년 혁명으로 이어졌으며, 니콜라이 2세는 이에 대응하여 10월 선언을 발표하고 의회(두마) 창설을 허용하였다.
황후 알렉산드라는 혈우병을 앓고 있던 외아들 알렉세이의 치료를 위해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궁정으로 불러들였고, 라스푸틴은 황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정에 개입하여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리 표트르 스톨리핀은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1911년 암살당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몰락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는 참전하였으나 연이은 패배로 국내 사정이 악화되었다. 1915년 니콜라이 2세는 직접 최전방에서 군대를 지휘하겠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났고, 그 사이 국정은 황후와 라스푸틴에게 위임되었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식량난과 경제난 속에서 민중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1917년 3월(러시아력 2월),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발생하여 2월 혁명이 일어났다. 군대마저 혁명에 가담하자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3월 15일 동생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에게 양위하는 방식으로 퇴위하였고, 미하일도 즉위를 거부함으로써 304년간 지속된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렸다.
감금과 처형 퇴위 후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은 알렉산드롭스키 궁전에서 가택연금되었고, 이후 토볼스크로 유배되었다가 1918년 봄 볼셰비키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로 이송되었다. 1918년 7월 17일, 이파티예프 하우스에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 네 명의 딸(올가, 타티야나, 마리야, 아나스타시야),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 및 측근들이 함께 총살당하였다. 시신은 소각된 후 인근 숲에 매장되었다.
사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예카테린부르크 인근에서 발굴된 유해는 DNA 검사를 통해 니콜라이 2세 가족의 시신으로 확인되었다. 유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드로-바울로 성당에 안치되었다. 2000년 러시아 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을 수난자(성인)로 시성하였다. 2008년 러시아 대법원은 니콜라이 2세가 정치적 탄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판결을 내려 그의 정치적 복권이 이루어졌다.
가족 관계 배우자: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헤센의 알릭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 자녀: 올가(1895~1918), 타티야나(1897~1918), 마리야(1899~1918), 아나스타시야(1901~1918), 알렉세이(1904~1918)
니콜라이 2세는 영국의 조지 5세(어머니들이 자매)와 이종사촌 관계로, 외모가 매우 유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