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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콥

니콜라스 콥(Nicolas Cop, 약 1501년~1540년)은 16세기 프랑스 출신의 스위스 개신교 개혁가이며, 파리 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 표기인 니콜라우스 코푸스(Nicolaus Copus) 또는 니콜라우스 콥(Nicolaus Cop), 코프(Kopp), 코프(Kob), 코프(Cope)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니콜라스 콥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주치의였던 기욤 콥(Guillaume Cop)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미셸 콥(Michel Cop)과 함께 몽테규 대학교(Collège de Montaigu)에서 수학하였고, 이 시기에 종교 개혁가 장 칼뱅(John Calvin)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1533년 10월 10일, 니콜라스 콥은 파리 대학교의 학장(rector)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11월 1일 만성절(All Saints' Day)에 학장 취임 연설을 진행하였는데, 이 연설에서 그는 마태복음 5장 1~12절의 팔복(八福) 강해를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 필요성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롭다함'(이신칭의) 교리를 옹호하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이 연설은 당시 가톨릭 교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으며, 칼뱅이 연설 초안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나 칼뱅이 직접 작성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부족하다.

이 연설 직후인 1533년 11월 3일, 두 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파리 고등법원(Parlement de Paris)에 니콜라스 콥을 이단 혐의로 고발하였다. 그는 왕과 대학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결국 파리를 떠나 바젤로 피신하였다. 이후 1534년 2월 바젤에 도착하였으며, 에라스무스, 루트비히 베어 등과 함께 프라이부르크를 거쳐 개신교 개혁가들과 교류하였다.

니콜라스 콥은 프랑스 왕의 누이인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Marguerite de Navarre)의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1535년 1월에는 칼뱅이 바젤에서 그와 합류하였다. 이후 그는 파리로 돌아와 1536년 5월 의학 면허를 취득하였고, 파리 대학교에서 의학을 가르쳤다. 1539년에서 1540년 사이의 겨울에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개신교 친척들은 후에 라인란트 지역으로 피신하였으며, 콥(Cop)이라는 성씨는 독일어화되어 '코프'(Kob)가 되었고 이후 미국 식민지에서 '코프'(Cope)로 영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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