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샤를 우디노(Nicolas-Charles Oudinot, 1767년 4월 25일 ~ 1847년 9월 13일)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행정가로,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활약한 인물이다. 레지오 공작(Duc de Reggio) 작위를 보유했으며, 나폴레옹 1세가 임명한 프랑스 제1제국의 26명 원수(Maréchal d'Empire) 중 한 명이다.
우디노는 프랑스 동부 바르르뒤크(Bar-le-Duc)에서 양조업을 하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1784년 프랑스 왕실 군대에 입대했으나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에 제한이 있었고, 1787년 제대하였다. 이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1792년 뫼즈(Meuse) 지역 의용군의 지도자가 되었고, 1793년 정규군에 배치되어 카이저슬라우테른(Kaiserslautern)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794년 여단장(général de brigade)으로 승진하였고, 1799년에는 사단장(général de division)이 되어 앙드레 마세나(André Masséna) 원수 휘하에서 참모장으로 복무하며 스위스와 이탈리아 전역에 참여하였다.
1805년부터 1807년까지의 전역에서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전투 등에서 정예 사단을 지휘하였다. 1809년 바그람(Wagram) 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프랑스 원수로 승진하였고, 1810년에는 레지오 공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1809년부터는 네덜란드 행정관으로도 근무하였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참여하였고, 1813년 그로스베렌(Großbeeren) 전투에서 프로이센 군에게 패배한 후 미셸 네(Michel Ney) 원수에게 사령관직을 넘겼다. 1814년 나폴레옹이 퇴위하자 부르봉 왕정 복고를 지지하여 루이 18세 편에 섰으며, 1815년 백일천하 기간에도 나폴레옹 대신 루이 18세를 지지하였다. 1823년에는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스페인에서 근무하였다. 1842년부터 1847년 사망할 때까지 파리의 앵발리드(Les Invalides) 기념관 책임자를 지냈다.
우디노는 군인 경력 동안 포탄, 검, 총탄 등에 의해 총 34차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그의 전장에서의 맹렬한 활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