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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바 트로바

누에바 트로바(Nueva Trova, 스페인어로 '새로운 트로바'라는 뜻)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1967년에서 1968년경에 등장한 쿠바 음악의 운동이다. 전통적인 트로바(trova)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그 내용이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전통 민속 음악 관용구와 진보적이고 종종 정치화된 가사를 결합하였으며, 라틴아메리카, 특히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ón) 운동과 관련이 깊다. 일부 누에바 트로바 음악가들은 당시의 록과 팝 음악의 영향도 받았다.

누에바 트로바는 쿠바 혁명과의 연관성, 그리고 사회주의, 불의, 성차별,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과 같은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일상의 진부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가사에 의해 정의된다. 쿠바 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인 아이다 산타마리아(Haydée Santamaría)가 이 운동의 창시자이자 후원자였다.

주요 영향으로는 범라틴아메리카 '신곡 운동'(new song movement), 194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유행한 낭만적인 노래 운동인 필린(filín, feeling), 남미의 누에바 칸시온, 스페인의 노바 칸소(Nova Cançó), 볼리비아의 칸토 누에보(canto nuevo), 포르투갈의 칸토 리브르(canto livre)와 노바 칸상(nova canção), 브라질의 트로피칼리아(Tropicalismo) 등이 있다. 또한 밥 딜런, 조안 배즈와 같은 미국의 항의 음악가, 비틀즈, 칠레의 비올레타 파라, 우루과이의 다니엘 비글리에티, 카탈루냐의 조안 마누엘 세라트 등도 주요한 영향원으로 꼽힌다.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íguez), 노엘 니콜라(Noel Nicola), 파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és)가 이 스타일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로 자리 잡았다. 1967년 아바나의 카사 데 라스 아메리카스(Casa de las Américas)에서 항의 노래 축제(Festival de la canción de protesta)가 열렸으며, 1968년 2월 18일 동 기관에서 열린 콘서트는 누에바 트로바 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1969년에는 쿠바 영화예술산업연구소(ICAIC) 산하에 실험음악그룹(GESI, Grupo de Experimentación Sonora del ICAIC)이 창설되어 레오 브로워(Leo Brouwer)의 지휘 아래 젊은 음악가들이 활동하였다. 1972년 12월 만사니요(Manzanillo)에서 열린 제2차 젊은 트로바도르스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누에바 트로바 운동'(Movimiento de la Nueva Trova)이 창립되었다.

누에바 트로바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소련 붕괴 이전부터 이미 쇠퇴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 쿠바 내외에서 인기가 하락하였으며, 특히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성공으로 더 오래된 쿠바 음악 형식이 재조명되면서 대비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카를로스 푸에블라(Carlos Puebla)의 'Hasta siempre'와 같은 높은 음악적·서정적 완성도를 지닌 곡들은 여전히 널리 향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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