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전복(儂全福, ? ~ 1039년)은 11세기 초 중국 송나라 광서(廣西) 광원주(廣源州, 현재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징시시 및 톈둥현 일대) 일대의 최대 세력이었던 광원주만(廣源州蠻, 현재 중국의 좡족 및 베트남의 눙족 계통)의 지도자이다.
농전복의 아버지 농민부(儂民富)는 송 태종으로부터 검교사공(檢校司空), 어사대부(御史大夫), 상주국(上柱國) 등의 관직을 받았으며, 농전복은 그 뒤를 이어 송 진종으로부터 당유주(儻猶州, 현재 광시 푸쑤이현)의 지주(知州)로 임명되었다. 이후 농전복은 동생 농존록(儂存祿)과 처제 당도(當道)를 제거하고 만애주(萬涯州)와 무륵주(武勒州)를 점령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 광원주가 송나라와 베트남 리 왕조의 경계에 근접해 있었으므로, 농전복은 리 왕조에 칭신(稱臣)하기도 하였다. 당시 광원주의 금광을 개발하여 경제적으로 부강해졌으며, 인근의 백성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크게 키웠다.
1029년, 농전복은 자신의 영지에 장기국(長其國) 또는 장생국(長生國)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소성황제(昭聖皇帝)를 칭하였다. 아내 아농(阿儂)을 명덕황후(明德皇后)로, 아들 농지총(儂智聰)을 남아왕(南衙王)에 봉하고 리 왕조에 대한 신하의 예를 거부하였다. 이에 1039년 2월, 리 태종(李太宗)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장기국을 기습 공격하였다. 농전복은 도주하였으나 결국 아들 농지총 등 다섯 명과 함께 사로잡혔고, 탕롱(Thăng Long)에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농전복의 또 다른 아들인 농지고(儂智高)는 살아남아 도망쳤으며, 이후 농전복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 1050년대에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