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巖眞蹟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의 시문과 학설, 서찰(편지) 등을 모아 엮은 친필 전집(장첩, 粧帖)이다.
서지 사항
- 형태: 4책 (수·목·금·토)
- 지정: 1989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당시 유형문화재) 지정
- 소장처: 대전광역시 유성구 상대동, 대전시립박물관
- 원소장자: 대전 대덕구 중리동 김영한(金英漢)
내용
- 김창협의 사상·학문·시 등이 담겨 있으며, ≪농암집(農巖集)≫에 수록되지 않은 글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원본 그대로 전해진다.
- 대부분 김창협이 김시좌(金時佐) 라는 제자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김시좌는 김창협의 고제(高弟)이자 ≪농암집≫ 편찬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 편지의 시기는 1695년(숙종 21) 10월 26일부터 1704년(숙종 30) 12월 26일까지로, 김시좌가 32세에서 41세 사이에 받은 것이다.
- 내용은 주로 원고 교정, 서적 구입, 경제적 문제 등 일상적인 사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김창협의 생생한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분류 체계
- 모두 107폭을 장첩하여 화(火)·수(水)·목(木)·금(金)·토(土) 의 오행(五行)으로 분류하였다.
- 다만 화집(火集)은 김창협의 친필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서찰을 모은 것이어서 문화유산 지정에서 제외되었다.
편찬 경위
- 김시좌의 집안에 가장(家藏)되어 전해지다가, 김시좌의 현손(玄孫)인 김성근(金性根) 이 1838년(헌종 4)에 장첩하여 현재의 형태로 만들었다. 김성근이 경위를 적은 발문이 뒤에 실려 있다.
학술적 가치
- ≪농암진적≫은 김창협의 친필 원본으로, ≪농암집≫에 수록된 편지와 비교할 때 원본의 변개 양상과 문집 편찬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김시좌는 ≪농암집≫ 편찬 시 김창협의 도학자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개인적 일상사를 삭제하고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 난해한 초서(草書)로 작성되어 있어 탈초(脫草)와 역주(譯註)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관련 저서
- 『농암진적: 농암 김창협의 삶과 편지, 그리고 사상』(한국초서연구회 탈초·역주, 민속원, 2015)
- 『김창협의 농암진적』(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국간찰자료선집 19,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