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논어》(論語)는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와 그 제자들의 언행과 대화를 기록한 유교 경전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유교의 기본 교리를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로 평가된다.
명칭과 어원
'논어'라는 명칭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양(梁)나라의 학자 황간(皇侃)은 "이 책은 공자의 문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먼저 자세히 따진 뒤에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한 뒤에야 기록했으므로 '논(論)'이라 하였고, '어(語)'란 논란에 대해 대답하고 설명한다는 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원(元)나라의 하이손(何異孫)은 '글뜻을 토론한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보았으며, 청(淸)나라의 원매(袁枚)는 '논은 의논이란 뜻이며 어는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초기에는 《논어》라는 이름 대신 전(傳), 기(記), 논(論), 어(語) 등의 명칭으로 불렸으며, '논어'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것은 전한(前漢) 경제~무제 시기로 추정된다.
저자와 편찬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자 사후 그의 제자들이 각지에 흩어져 교육에 종사하면서 스승의 말을 죽간(竹簡)에 기록하여 가르침에 활용하였고, 후에 이들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 정리는 공자의 가장 나이 어린 제자였던 증삼(曾參)의 제자들이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논어》는 어느 한 시기에 완성되었다기보다 여러 차례에 걸쳐 편찬된 것으로 본다. 첫 번째 단계는 공자 사후 중궁(仲弓), 자유(子游), 자하(子夏) 등 제자들이 주도하였고, 두 번째 단계는 증자 사후 유자(有子), 민자(閔子) 등이 참여하였으며, 전국시대 맹자(孟子) 시기 또는 그 이후에도 내용이 보충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판본의 역사
한나라 시기에는 세 가지 종류의 《논어》가 전해졌다. 제(齊)나라 사람들이 전한 '제논어(齊論語)', 노(魯)나라에서 전한 '노논어(魯論語)', 그리고 공자의 옛집 벽 속에서 발견된 '고문논어(古文論語)'가 그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논어》는 전한(前漢) 말 장우(張禹)가 노논어를 중심으로 편집한 교정본이다.
구성
현행 《논어》는 전20편, 약 482장, 600여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의 이름은 그 편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이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서술 방식과 호칭의 차이를 기준으로 앞의 10편을 상론(上論), 뒤의 10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며, 상론이 더 이른 시기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상론(上論) 10편: 제1편 학이(學而), 제2편 위정(爲政), 제3편 팔일(八佾), 제4편 이인(里仁), 제5편 공야장(公冶長), 제6편 옹야(雍也), 제7편 술이(述而), 제8편 태백(泰伯), 제9편 자한(子罕), 제10편 향당(鄕黨)
하론(下論) 10편: 제11편 선진(先進), 제12편 안연(顔淵), 제13편 자로(子路), 제14편 헌문(憲問),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제16편 계씨(季氏), 제17편 양화(陽貨), 제18편 미자(微子), 제19편 자장(子張), 제20편 요왈(堯曰)
상론은 문장이 간략하고 짧은 반면, 하론은 문장이 길고 글자 수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주요 내용과 사상
《논어》의 핵심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성된다. ① 공자의 직접적인 말씀, ② 공자와 제자 사이의 문답, ③ 공자와 당시 인물들과의 대화, ④ 제자들의 발언, ⑤ 제자들 간의 대화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 개념은 '인(仁)'이다. 인은 좁은 의미에서는 지(知, 지혜)와 용(勇, 용기)과 함께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세부 덕목 중 하나이나, 넓은 의미에서는 공자가 내세운 모든 도덕적 덕목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공자는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을 중시하였으며, '인'을 실천하는 이상적 지도자로서 군자(君子)를 제시하였다. 원래 '군주의 자제'라는 신분적 의미를 지니던 '군자'는 공자에 의해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로 개념화되었다.
공자는 예(禮)로 자신을 절제하고 악(樂, 음악)으로 조화를 추구하며, 학문을 통해 군자로 거듭나고 정치를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도덕적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에서의 전래와 영향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유교의 전래와 함께 《논어》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3~4세기 경 한성백제 시대 목간에 제5편 공야장(公冶長) 편의 주요 내용이 기록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사기》에는 642년(선덕여왕 11년) 화랑 죽죽(竹竹)이 《논어》의 구절을 인용한 기록이 나타난다.
신라시대에는 682년(신문왕 2) 국학(國學)이 체계를 갖추었을 때 《논어》가 교육 과목으로 포함되었으며,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에서도 필수 과목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성종 때 수서원(修書院)이 설치되어 문헌을 수집하였고, 경연(經筵)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논어》의 첫 간행은 1056년(고려 문종 10년)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오경(五經)보다 사서(四書)를 중시하는 주자학이 지배 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논어》는 시골 벽촌의 어린 학동들까지 배우는 기본 경전이 되었다. 이황(李滉)은 《논어석의(論語釋義)》를 저술하였고, 정약용(丁若鏞)은 문헌비판적 방법론에 입각한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를 통해 한대(漢代)에서 청대(淸代)에 이르는 중국 학자들과 한국 및 일본의 연구 성과를 망라한 독자적 주석을 제시하였다.
주석서와 번역
《논어》의 대표적 주석서로는 하안(何晏)의 《논어집해》(고주로 칭함)와 주희(朱熹)의 《논어집주》(신주로 칭함)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조선의 정약용이 지은 《논어고금주》는 고주와 신주의 폐단을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 해석을 추구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는 16세기 후반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라틴어로 일부 번역되었으며, 이후 아서 웨일리(Arthur Waley), A. 찰스 뮬러(A. Charles Muller), 윌리엄 수딜(William Soothill) 등의 영어 번역본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 평가와 영향
《논어》는 동아시아 전역의 철학, 윤리, 정치, 교육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과거 시험에서는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으며, 2천 년 가까이 학자들의 기본 교양 과정이었다. 서구에서는 볼테르(Voltaire)가 《논어》를 당대의 허황된 형이상학이나 신학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철학서라고 칭송하며 공자를 존경하였다.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는 공자의 《논어》가 가장 오래된 지적이고 영적인 완벽한 개인의 초상이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