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개태사지(論山 開泰寺址)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고려 시대 사찰 터이다.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면적은 5,412㎡, 전체 면적은 65,637㎡에 달한다.
창건 배경 및 역사
고려 문인 이규보가 쓴 〈개태사 조전원문〉에 따르면, 개태사는 고려 태조 19년(936년)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한 후 국찰(國刹)로 창건한 국립 개국사찰이다. 왕건은 전쟁을 마치고 나라가 안정되어 감에 따라, 전쟁 중에도 백성이 생업을 유지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 부처님과 산신령의 도움이라고 생각하여 이 절을 창건하고 '개태사(開泰寺)'라 명명하였다. 절의 완공은 태조 23년(940년)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 최대의 호국수호 사찰로, 전성기에는 천여 명의 승려가 상주하여 화엄법회를 갖는 등 승려 양성 도량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한때 8만 9암자(八萬九庵子)를 소속시켰다고 전해진다. 절 안에는 태조의 초상화(진영)가 봉안되어 있어, 나라에 전쟁의 기미가 있으면 그 앞에 기원문을 올려 태평을 빌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아들 신검에게 나라를 빼앗긴 견훤이 이 개태사에서 쓸쓸하게 사망하였다고 전해지나, 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제한적이다.
쇠퇴와 중건
고려 후기에 이르러 왜구의 빈번한 약탈로 인해 점차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종 10년(142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이후 근대에 들어 일부가 재건되어 오늘날의 개태사가 자리하고 있다.
경역 및 발굴 조사
개태사 경역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현재 삼존불의 보호각과 요사체가 있는 지역으로, 현재 사찰이 운영되는 개태사 지역이다.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서 동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마을에 있는 유구로, 고려 태조의 진영(眞影)을 모셨던 건물지(진전)이다.
1986년 석불보호각 보수 과정에서 창건 당시의 초석과 기단 석재가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 규모가 확인되었으며, 동서 21.5m, 세로 10.3m의 기단이 확인되었다. 1989년에는 진전 유적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진전 자리는 남쪽 건물지(회랑 형태)와 북쪽의 진전 건물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확인되었다. 진전 건물지의 특징은 중앙 북쪽에 불단에 해당하는 기단 유구가 있고, 그 앞에 세 개의 대형 석재가 배치된 점이다. 기록에 나오는 태조의 진전으로 추정되며, 양쪽 구멍에 기둥을 꽂아 그림을 걸고 중앙 기단에는 태조의 상을 모셨을 가능성이 있다.
진전 자리 서쪽에서는 리움미술관 소장의 금동탑(국보)이 출토되었고, 진전 남쪽에서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대형 반자(飯子, 놋쇠로 만든 식기)가 발견되었다.
지리적 특징
이 일대는 백제의 계백 장군과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전투를 벌였던 황산벌에 가깝고, 고금을 통틀어 군사·교통상의 요지였다. 사찰 주변에는 약 6km에 달하는 토성이 있었으며, 승병이 주둔하여 사찰을 수비하였다.
관련 문화재
-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219호):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개태사를 짓고 940년에 건립한 삼존불상으로, 가운데 본존 불상은 약 4.15m, 왼쪽 보살상은 약 3.5m, 오른쪽 보살상은 약 3.21m이다.
- 개태사 철확(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 전성기에 장국을 끓였다고 전해지는 쇠솥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에 달한다.
- 개태사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4호): 본래 옛 개태사지 북쪽 건물터 근처에 있던 것을 20세기 개태사 중건 과정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 개태사지 석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기가 지하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