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Nokia)는 핀란드 피르칸마(Pirkanmaa) 지역에 위치한 도시이다. 탐페레(Tampere)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코케매키(Kokemäki) 강 수계에 속하는 노키안비르타(Nokianvirta)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는 약 3만 7천 명으로 핀란드에서 33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방자치단체이며, 탐페레 광역권에 속한다.
이름의 유래
노키아라는 이름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현대 핀란드어에서 'noki'는 '그을음'을 뜻하며, 'nokia'는 그 굴절 복수형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이 형태가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이 이름이 고대 핀란드어 'nois'(복수형 'nokia') 또는 'nokinäätä'(그을음 담비)에서 유래했다는 것으로, 이는 '검은담비(sable)'를 의미한다. 검은담비가 핀란드에서 멸종된 후에는 이 단어가 담비 등 짙은 털을 가진 동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검은담비는 노키아 시의 문장에도 그려져 있다. 다만 이후 연구에 따르면 검은담비가 실제로 핀란드에 서식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nois'가 비버를 가리켰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시의 문장은 구스타프 폰 누메르스(Gustaf von Numers)가 설계했으며 1951년에 공식 확정되었다.
역사
노키아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505년 문서로, 스웨덴어로 "큰 노키아와 작은 노키아"(Stoora och Lilla Nokia)라 불리는 두 농장이 언급되어 있다. 이 두 농장에서 노키아 영지(Nokia Manor)가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당시 피르칼라(Pirkkala) 교구에 속해 있었다.
1596년부터 1597년까지 핀란드(당시 스웨덴 왕국령)에서 발생한 농민 봉기인 몽둥이 전쟁(Club War)에서 노키아는 가장 큰 전투 중 하나가 벌어진 장소였다. 몽둥이로 무장한 농민들은 노키아 영지를 점거하고 여러 차례 기병대와의 교전에서 승리했으나, 1597년 1월 1일~2일 클라우스 플레밍(Klaus Fleming)에 의해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수천 명의 농민이 사망했고, 지도자 야코 일카(Jaakko Ilkka)는 도주했다가 수 주 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몽둥이 전쟁은 핀란드 역사상 마지막 대규모 농민 봉기로 기록된다. 이후 1918년 핀란드 내전 당시에는 노키아가 탐페레와 함께 적위대(Red Guards)의 거점이 되어 일부 교전이 발생했다.
행정 구역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1922년 수르피르칼라(Suur-Pirkkala)가 북부와 남부로 분할되었고, 노키아는 당시 북피르칼라(Pohjois-Pirkkala)에 속했다. 현재 탐페레의 일부인 피스팔라(Pispala) 지역도 1937년까지 노키아의 일부였다. 1938년 북피르칼라가 '노키아'로 개칭되었고, 남피르칼라는 '피르칼라'가 되었다. 1973년 수오니에미(Suoniemi), 1976년 토티얘르비(Tottijärvi)가 노키아에 통합되었으며, 1977년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다.
산업사
노키아는 동명의 글로벌 통신 기업인 노키아 코퍼레이션(Nokia Corporation)의 기원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광산 기술자 프레드릭 이데스탐(Fredrik Idestam)이 1868년 노키아 마을 인근 노키안비르타 강 유역에 두 번째 목재 펄프 공장을 설립했고, 1871년 그의 기업이 '노키아 악티에볼라그'(Nokia Aktiebolag, 노키아 주식회사)로 명명되면서 기업명의 유래가 되었다. 핀란드 고무공장(Suomen Gummitehdas Oy)은 1904년 노키아에 공장을 세웠다. 이 두 기업과 핀란드 케이블공장(Suomen Kaapelitehdas Oy)이 1967년 합병하여 노키아 코퍼레이션이 설립되었다.
이후 노키아 코퍼레이션의 여러 사업 부문은 1988년부터 1996년 사이에 분할·매각되었으며, 고무 공장 부문은 현재 노키안타이어스(Nokian Tyres)로, 제지 부문은 에시티(Essity)로 운영되고 있다. 노키아 코퍼레이션의 통신 사업은 1960년대 초 핀란드 케이블공장의 전자 부문으로 헬싱키에서 시작되었으며, 본사는 이후 에스포(Espoo)로 이전했다. 현재 노키아 코퍼레이션은 노키아 도시 내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지 않으며, 도시 내 남아있는 회사의 흔적은 사적인 행사에 사용되는 노키아 영지 저택 정도이다. 시는 휴대전화가 이곳에서 생산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과 관련된 기념 사업을 지속적으로 거절해 왔다. 다만 노키아 시에서 15km 떨어진 탐페레에는 노키아의 시스템온칩(SoC) 연구개발 부서가 존재한다.
현황
오늘날 노키아는 스파, 공장 직판점, 수상 관광, 각종 행사로 알려져 있다. 주요 기업으로는 AGCO 파워, 노키안타이어스, 푸르소(Purso), 파트리아 에비에이션(Patria Aviation), 에시티 제지 공장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노키아 부흥 운동(Nokia Revival)이라는 기독교 부흥 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노키아는 자체적인 고유 음식 문화로 '쿠우마 코이라'(Kuuma koira, 매운 소시지 요리)를 내세우며, 노키안 브루어리(Nokian Brewery)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탐페레의 스튜디오 시설과 가까워 영화 및 TV 촬영지로도 사용된 바 있다.
교통
노키아는 도로와 항공 교통이 편리하다. 탐페레 공항까지는 도로로 약 16km 거리에 있다. 헬싱키까지는 약 180km, 투르쿠까지는 약 150km, 포리까지는 약 95km 떨어져 있다. 노키아는 자매 도시로 스웨덴 칼스타드, 노르웨이 모스, 덴마크 호르센스, 아이슬란드 블뢴뒤오스를 두고 있다.
인구 통계
노키아의 인구는 1980년 약 2만 3,600명에서 꾸준히 증가하여 2025년 기준 약 3만 6,500명에 이른다. 주민의 약 95.5%가 핀란드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스웨덴어 사용자는 약 0.3%, 기타 언어 사용자는 약 4.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