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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회

노장회(老壮会·老荘会, 일본어: 로소카이)는 일본 다이쇼(大正) 시대에 존재했던 사상단체이다. 정확한 명칭은 일본어로 "로소카이(ろうそうかい)"라고 읽히며, 한자 표기로는 "老壮会" 또는 "老荘会" 두 가지가 모두 사용되었다.

설립과 배경

노장회는 1918년 10월 9일에 창립되었다. 설립의 중심 인물은 일본주의자였던 미쓰카와 가메타로(満川亀太郎)로, 그가 실질적인 세주인(世話人) 역할을 맡았다. 설립 배경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일본의 쌀 소동(미소동) 등으로 촉발된 국내외의 사회적 불안과 민주주의 사상의 확산이 있었다. 미쓰카와는 이러한 시대적 격변 속에서 현상 타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이 단체를 설립하였다. 사무소는 당시 도쿄 우시고메구(현 신주쿠구) 미나미초 1번지에 두었다.

성격과 참여 인물

노장회는 좌익과 우익을 아우르는 이색적인 사상단체였다. 좌파 사회주의자로는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 다카하타케 모토유키(高畠素之), 다카오 헤이헤이(高尾平兵衛), 시모나카 야사부로(下中弥三郎) 등이 참여했고, 우익 계열로는 기타 잇키(北一輝),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 곤도 세이쿄(権藤成卿) 등이 참가하였다. 또한 오이 켄타로(大井憲太郎), 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 등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이 함께했다. 이처럼 이념이 상반되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은, 이 단체가 일정한 주의·주장을 가진 정당이 아니라 국내외의 제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자유로운 연구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활동과 해소

노장회 자체는 매월 1회 정도의 집회와 강연회를 여는 정도로 그 자체의 독자적인 정치 활동은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 1921년까지 지속되면서 총 44회에 걸친 회합이 열렸고, 5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기록된다. 회합에서는 '국가 개조(國家改造)'에 관한 논의가 오갔으며, 이후 일본의 새로운 국가주의 운동이 싹트는 모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좌익 성향 인사들의 탈퇴가 늘어나면서 단체는 자연스럽게 분열·해체되었다. 급진적 우익 성향의 미쓰카와, 오카와, 기타 잇키 등은 유존사(猶存社)로, 다카하타케 모토유키 등은 대중사(大衆社)로 각각 갈라져 나갔다.

역사적 의의

노장회는 일본의 우익 운동이 구식의 국수주의(國粹主義) 운동에서 근대적 파시즘 운동으로 전환하는 첫걸음이 된 단체로 평가된다. 좌우의 이념을 막론하고 자유로운 사상 교류가 이루어졌던 교차점으로서, 다이쇼 시대 일본 지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브리타니카 국제대백과사전을 비롯한 주요 사전 및 학술 자료에 등재되어 있는 실재 역사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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