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호(한국 한자: 盧仁鎬, 1960년 9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다. 현역 시절 공격수(스트라이커)로 활약했으며, 1980년대 초반 한국 프로축구(K리그)의 초기 멤버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주요 이력
| 구분 | 내용 |
|---|---|
| 출생 | 1960년 9월 10일, 대한민국 |
| 키 | 183 cm |
| 포지션 | 공격수 |
| 대학 | 명지대학교 (축구부) |
| 클럽 경력 | - 현대 호랑이 (1984 ~ 1985) - 유공 코끼리 (1986) |
| 국가대표 | 대한민국 대표팀 (1983) – 4경기 출장, 3골 기록 |
| 대표 경기 | 1983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태국과 나이지리아에 각각 득점 |
클럽 경력
- 현대 호랑이: 1984년 프로 리그 개막과 동시에 입단하였다. 당시 현대 호랑이는 한국 프로축구 최초의 구단 중 하나였으며, 노인호는 팀의 주요 공격수로 활약했다.
- 유공 코끼리: 1986 시즌 초에 이적했으며, 시즌 도중 군 입대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경력
명지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3년에 대통령배 국제축구대전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6월 6일 태국과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고, 6월 8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팀을 1–0 승리로 이끌었다. 총 4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하였다.
이중 등록 논란
노인호가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기 전, 대우 로얄즈와 이중 등록(두 구단 모두가 선수 소유권을 주장)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1983년 7월 대우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대우는 아마추어 팀이었기 때문에 정식 계약이 불가능했다. 현대는 이를 이용해 노인호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고, 양 구단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였다. 1984년 프로연맹이 노인호를 현대 선수로 인정했으며, 대우는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채권 가압류를 신청해 임금 일부가 가압류되는 사태까지 번졌다.
은퇴 이후
선수 생활을 마친 뒤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공개된 자료는 제한적이다. 다만, 과거 축구계에서 겪었던 논란과 활약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노인호는 한국 프로축구 초창기의 중요한 인물이며, 대학 축구에서 국가대표까지 빠르게 성장한 사례로 남아 있다. 그의 커리어는 당시 축구계의 구조적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한국 축구 발전 과정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