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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형

노익형(盧益亨, 일본식 이름: 瑞原益亨)은 일제강점기의 출판인이자 언론인이다. 한자명 '익형(益亨)'에서 알 수 있듯 '노익형'은 실존 인물의 이름으로, 대한제국 시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 근대 출판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생애 및 활동

노익형은 1884년 5월 12일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양기탁, 주시경, 이준 등 개화파 청년들과 가까이 지낸 인물이었다. 주시경이 교사를 맡았던 상동교회의 상동청년학원 설립에 찬조금을 내 도왔고, 주시경 번역으로 《월남망국사》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1907년, 노익형은 경성 남부 상동 지역에서 출판사 겸 서점인 박문서관을 창설하였다. 창업 당시 자본금 200원으로 시작했으며, 그가 말한 설립 동기는 "그때 우리 조선에도 신문화가 수입되기 시작하는데 역시 책전 같은 것도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박문서관은 이후 봉래동으로 옮겼다가 1925년 이후 종로 2가에 정착하였다.

1930년대에는 경성부에서 서점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1938년 잡지 《조광》과의 인터뷰에서 박문서관의 경영인 자격으로 출판 활동의 경위를 설명한 바 있다.

《신시대》 발행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노익형은 잡지 《신시대》를 발행하는 신시대사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 겸 발행인을 지냈다. 《신시대》는 월간 잡지로 《박문》의 자매지였으며, "시국하 반도민중에게 필요한 일체의 국민지식과 훈련과 사상의 보급, 전달"을 목표로 삼는 전형적인 친일 매체였다. 노익형은 이 잡지를 통해 전쟁 수행과 근로 동원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신시대사는 함흥, 청진, 대구에 지사를 두었고 도쿄와 오사카에도 지사가 있었다. 잡지 초기에는 일부 지면을 활용해 일본어 기사를 실었으나, 곧 내선일체 취지에 맞도록 일본어와 한국어를 혼용하고 집필도 일본인과 한국인이 공동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노익형은 1941년에 사망하였으며, 신시대사의 제2대 발행인은 아들인 노성석이 이어 맡았다. 이 밖에 노익형은 경성상공협회의 이사를 역임하였다.

평가 및 관련 사항

노익형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준비 과정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중 언론/출판 부문에 아들 노성석과 함께 포함되었다.

한편 그가 설립한 박문서관의 목판 일괄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541호(2013년 4월 17일 지정)로 지정되어, 한국 근대 출판의 역사적 자료로서 보존되고 있다.

참고 자료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민족문제연구소.
  • 최경봉 (2005년). 《우리말의 탄생》. 책과함께.
  • 이현식 (2006년). 《제도사로서의 한국 근대 문학》.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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