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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추

노상추(盧尙樞, 1746년 2월 26일 ~ 1829년)는 조선 후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안강(安康)이며, 자는 용겸(勇謙), 호는 서산와(西山窩)이다. 이 인물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일기 가운데 가장 장기간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평가되는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를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상추는 경상도 선산(善山) 지역에 세거하던 안강 노씨 집안 출신이다. 안강 노씨는 조선 초 이후 전형적인 영남 남인(嶺南 南人)의 가풍을 지닌 사족(양반) 집안이었다. 그러나 숙종대 갑술환국 때 그의 선조 노이익(盧以益)이 처형된 이후, 이 집안은 문과를 통한 중앙 관직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졌으며, 이에 노상추의 조부 노계정(盧啓禎, 1670년대생)이 무과를 선택하여 무관으로 입신하였다. 노계정은 영조 원년(1725년) 무과에 급제한 뒤 무신란 당시 종군하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종2품)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가계 배경 속에서 노상추 역시 무과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게 된다.

노상추는 1746년(영조 22년) 2월 26일에 태어났다. 열일곱 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며, 1780년(정조 4년) 경자년 식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지방 출신으로서 선천(宣薦, 선전관 후보 추천)을 얻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아 한동안 관직을 얻지 못하다가, 1782년 12월에야 동도참군(정7품)으로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1784년에는 금군 별취재에서 3등을 차지하여 무겸(武兼)에 발탁되었고, 이후 함경도 갑산진관의 진동진만호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793년(정조 17년)에는 정조의 눈에 띄어 삭주부사(정3품)에 임명되었고, 우림위장(정3품)에까지 올랐다. 그의 이러한 출세는 조부 노계정의 명성과 정조의 배려가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왕조실록》에도 그가 당상 선전관으로 추천된 기록이 남아 있다.

노상추의 가장 큰 업적은 그가 남긴 《노상추일기》이다. 이 일기는 1763년(영조 39년)부터 1829년(순조 29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 67년간의 일상과 가족 생활, 관직 생활, 당대 사회의 풍속과 시대 변화 등을 매일 기록한 것으로, 총 51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일기에는 당시 조선 후기 무관의 생활, 촌락 구성원의 일상, 사회경제적 변화, 의례와 풍습 등이 상세히 담겨 있어, 18~19세기 조선 사회를 생생히 보여주는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된다. 현재 이 일기는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으며, 간찰첩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5호로 지정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를 탈초하여 총 4책(약 2,600쪽)으로 발간하였고, 이후 국역본도 간행되었다.

노상추는 1829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 노익엽(盧翼燁, 1771년~1851년) 역시 1804년(순조 4년)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으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상추와 그의 일기는 조선 후기 영남 남인 출신 무관의 삶과, 지방 양반 가문의 쇠락과 재기, 그리고 18세기 말~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반적인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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