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카 산조(野坂参三, Nosaka Sanzō, 1892년 3월 30일~1993년 11월 14일)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공산주의자로, 일본공산당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본명은 오노 산조(小野参弎)였으며, 중국에서는 오카노 스스무(岡野進) 또는 린저(林哲)라는 가명으로 활동하였다.
생애 개요
노사카 산조는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3월 30일생이어서 '산조'(参弎)라는 이름을 받았고, 9세 때 어머니의 친정인 노사카 가문의 양자가 되어 노사카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이재과(理財科)를 졸업한 뒤 우애회(友愛会)에 참여하며 노동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1919년 우애회의 파견으로 영국에 건너가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본격적으로 연구했고, 1920년 영국공산당 창립 멤버가 되었다. 이후 공산주의 활동으로 영국에서 추방당해 소련으로 이동했다. 1922년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공산당 창립에 참여하였고, 노동운동가 및 당 기관지 편집자로 활동했다.
1931년 소련으로 밀항하여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일본 대표로 활동했으며,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미국에서 첩보 활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1940년에는 중국 옌안(延安)으로 건너가 중국공산당에 합류해 일본군 포로를 재교육하고 일본인민해방연맹을 조직하는 등 전쟁 중 반일 활동을 전개했다.
전후 활동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 1월 일본으로 귀국해 일본공산당을 재건하는 데 참여했다. 같은 해 제22회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이후 참의원 의원(1956~1977)으로 활동했다. 1950년 코민포름의 비판을 계기로 당내에서 좌파·우파 계열이 대립하는 가운데 소감파(所感派) 지도자로서 덕전 구이치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레드 퍼지 시기에는 지하로 숨었다가 중국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1955년 귀국해 당 제1서기가 되었고, 1958년부터 1982년까지 일본공산당 초대 의장을 지냈다. 이후 명예의장으로 있었다.
최후기의 논란
1992년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문서에 근거해, 노사카가 1939년 소련에 있던 동지 야마모토 겐조(山本懸蔵) 등을 NKVD(내무인민위원부)에 밀고해 이들이 스탈린 대숙청의 희생양이 된 데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같은 해 9월 일본공산당 명예의장에서 해임되었고, 12월에 당에서 제명되었다. 다만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노사카의 밀고가 야마모토 숙청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설은 부정되기도 했다. 노사카는 1993년 11월 14일 10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자서전 《풍설의 발자취》(全8권, 1971~89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