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스웨덴어: Nobelpriset, 노르웨이어: Nobelprisen, 영어: Nobel Prize)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국제적인 상으로, 노벨 재단이 운영하며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업적에 대해 수여된다. 이 상은 1901년에 처음 수여되었으며, 알프레드 노벨이 1896년 12월 10일 사망한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어원 및 명칭 유래
노벨상이라는 명칭은 상의 설립자이자 유산을 기증한 알프레드 노벨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알프레드 노벨은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화학자·공학자·발명가로,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한 355개의 특허를 보유하였다. 그는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서 작성한 마지막 유언을 통해 자신의 총자산의 약 94%에 해당하는 3,100만 스웨덴 크로나를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분야에 상을 수여하는 데 사용하도록 남겼다.
역사적 배경
노벨의 유언은 당시 회의론에 부딪혔으며, 노르웨이 의회가 1897년 4월 26일에 이르러서야 승인하였다. 이후 유언 집행자 라그나르 솔만과 루돌프 릴리예크비스트가 노벨 재단을 설립하여 재산을 관리하고 상 수여를 조직하였다. 노벨 재단은 1900년 6월 29일에 사립 기관으로 공식 설립되었으며,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에 의해 노벨 재단 법률이 공포되었다. 첫 노벨상은 1901년 12월 10일에 수여되었으며, 물리학상은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엑스선 발견), 화학상은 야코뷔스 헨리퀴스 판트호프, 생리학 또는 의학상은 에밀 아돌프 폰 베링(디프테리아 항독소 개발), 문학상은 쉴리 프뤼돔, 평화상은 앙리 뒤낭과 프레데리크 파시에게 돌아갔다.
수상 분야
원래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분야였다. 여섯 번째 상인 경제학상(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노벨 재단에 기금을 기부하면서 신설되었으며, 1969년에 처음 수여되었다. 다만 경제학상은 엄밀히 말해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른 원래 노벨상이 아니라 노벨 기념상의 성격을 지닌다. 노벨 재단 이사회는 경제학상 추가 이후 더 이상의 새로운 상 신설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수여 기관
노벨상은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기관이 수여한다.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이 물리학, 화학, 경제학상을,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가 생리학 또는 의학상을, 스웨덴 아카데미가 문학상을 수여한다.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수여하며, 이에 따라 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상은 스웨덴,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수여된다.
선정 과정
노벨 위원회는 시상 전년도 9월에 관련 분야 저명인사 약 3,000명에게 추천 양식을 발송하며, 추천서 제출 마감일은 시상 연도 1월 31일이다. 위원회는 추천을 바탕으로 약 300명의 잠재 후보를 선정하며, 후보자 명단과 추천 기록은 상 수여 후 50년간 공개되지 않는다. 최종 수상자는 각 수여 기관이 과반수 투표로 결정하며, 그 결정은 항소할 수 없다. 수상자 발표는 매년 10월 첫 2주 동안 이루어지며, 각 상은 최대 3명까지 공유할 수 있다. 평화상은 조직에도 수여될 수 있다.
시상식 및 형식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은 매년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 기념일에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수여되며, 수상자는 스웨덴 국왕의 손에서 상을 받는다.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같은 날 수여된다. 수상자는 금메달, 디플로마, 그리고 상금을 받는다. 상금은 노벨 재단의 투자 수익에 따라 변동하며, 2023년 기준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03만 5천 미국 달러)에 해당한다. 수상자들은 상금을 과학·문화·인도주의 목적에 기부하는 경우가 흔하다. 수상자는 상 수여 후 6개월 이내에 공개 강연(노벨 강연)을 해야 한다.
역대 수상 통계
1901년부터 2024년까지 노벨상과 경제학상은 총 627회 수여되었으며, 1,012명의 개인 및 기관이 수상했다. 5명의 개인과 2개의 기관이 2개 이상의 노벨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1903년 물리학상과 1911년 화학상을 받아 두 개의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라이너스 폴링은 화학상(1954년)과 평화상(1962년)을 단독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최연소 수상자는 17세에 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2014년)이며, 최고령 수상자는 97세에 화학상을 받은 존 B. 구디너프(2019년)이다.
사후 수상 및 수상 거부
노벨상은 원칙적으로 사후에 수여되지 않으나, 추천과 수상 결정 사이에 사망한 경우는 예외가 적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31년 문학상 수상자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와 1961년 평화상 수상자 다그 함마르셸드가 있다. 1974년 이후로는 수상자 발표 시점에 생존해 있어야 하는 원칙이 강화되었다. 한편 장 폴 사르트르(1964년 문학상)와 레득토(1973년 평화상)는 자발적으로 수상을 거부한 사례이다.
경제학상의 논쟁
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른 원래 5개 분야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일부에서는 이를 엄밀한 의미의 노벨상이 아니라고 본다. 특히 알프레드 노벨의 후손인 페테르 노벨은 경제학상을 "가짜 노벨상"으로 규정하며 경제학이 유사과학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논란
노벨상은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정치적 의도와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받아 왔다. 평화상의 경우 헨리 키신저(1973년), 야세르 아라파트(1994년), 버락 오바마(2009년) 등의 수상이 논란을 일으켰다. 문학상 역시 유럽 작가 중심의 선정 경향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마하트마 간디가 다섯 차례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한 것은 대표적인 수상 누락 사례로 언급된다. 또한 최대 3명까지만 수상할 수 있는 규정으로 인해 공동 연구에서 일부 연구자가 제외되는 경우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의의 및 영향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노벨 재단은 2007년 말 기준 약 36억 2,800만 스웨덴 크로나(약 5억 6천만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으며, 상금과 시상식 운영 비용을 투자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다. 수상자 선정 과정의 비밀성과 엄격한 심사 절차는 노벨상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