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아누스파(Novatianism)는 3세기 중엽 로마 제국에서 발생한 초기 기독교의 분파이다. 명칭은 로마 교회의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약 200년~약 258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서기 250년, 로마 황제 데키우스(Decius)의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가 발생하자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부인하거나 이교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배교)를 하였다. 박해가 끝난 후, 이들 배교자(lapsi)를 교회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일 것인지가 초기 교회의 주요 논쟁이 되었다. 당시 로마 교회의 장로였던 노바티아누스는 배교자들이 아무리 회개하더라도 다시 교회에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만약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재세례를 거쳐야 한다는 극단적으로 엄격한 입장을 취하였다.
251년, 로마 주교로 고르넬리오(Cornelius)가 선출되자 노바티아누스는 고르넬리오가 배교자들을 너무 쉽게 용서하고 교회에 복귀시켰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스스로 대립 교황(antipope)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에서 노바티아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파문되었으며, 이후 노바티아누스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바티아누스파는 자신들을 '엄격주의자'라고 칭하며, 부패한 보편 교회의 관행과 결별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동조한 신자들에게 재세례를 베풀었으며, 배우자 사별 후 재혼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생활 규율을 따랐다. 4세기에서 5세기까지 활동한 도나투스파(Donatism)도 박해 시기 배교자 문제에 대해 노바티아누스파와 유사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바티아누스파는 로마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세력을 잃었다. 다만 이들의 엄격주의적 관습 중 일부는 4세기 수도원 제도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