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노무라 소동

노무라 소동(野村騒動)은 에도 시대 중기, 이세노쿠니(伊勢国) 구와나번(桑名藩)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구와나번의 번주였던 마쓰다이라 사다시게(松平定重)는 50년에 가까운 재임 기간 동안 잦은 수해와 화재로 인해 번 재정이 극도로 악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였다. 1681년의 대홍수로 피해가 심각해지자 사다시게는 가신들의 감봉과 176명의 가신 해고를 단행하였고, 1701년에는 성 아래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여 1,500채가 소실되고 천수각도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사다시게가 개혁을 주도하도록 발탁한 인물이 노무라 마스우에몬(野村増右衛門)이라는 군다이(郡代, 지방 행정관)였다. 노무라는 원래 8석 3인(3人扶持)의 박봉을 받는 하급 무사에 불과했으나, 사다시게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등용하였다. 노무라는 절약 정책 등 각종 개혁을 추진하여 점차 두각을 나타냈고, 결국 750석을 받는 군다이로 이례적인 승진을 이루었다.

그러나 노무라의 벼락출세는 보수적인 가로(家老, 번의 중신)들의 질시를 샀다. 결국 1710년 5월 29일, 노무라는 실각하여 사형에 처해졌다. 이 소동이 막부에 알려지면서 같은 해 윤8월 15일, 번주 마쓰다이라 사다시게는 에치고노쿠니(越後国) 다카다번(高田藩)으로 영지를 옮기게 되었다. 봉급 자체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산간 지역인 다카다로 쫓겨나 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어 사실상의 감봉이자 좌천이었다.

이 사건은 에도 시대 번(藩) 단위의 재정 개혁 과정에서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갈등이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 사례로, 일본 역사에서 '오이에 소동(お家騒動, 가문 내분)'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