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시어러(Norma Shearer, 본명: 이디스 노마 시어러, Edith Norma Shearer)는 캐나다 태생의 미국 배우이다. 1902년 8월 10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났으며, 1983년 6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들랜드힐스에서 사망하였다.
생애 및 경력
노마 시어러는 목재 상인인 아버지 앤드류 시어러와 어머니 에디스 피셔 시어러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의 주도로 뉴욕으로 이주하여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플로렌스 지그펠트로부터 외모를 이유로 거절당했으나, 단역을 통해 경력을 쌓았다.
1923년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와 계약을 맺었고, 1927년 MGM의 부사장이자 영화 제작자였던 어빙 솔버그(Irving Thalberg)와 결혼하였다. 1929년 영화 《메리 듀건의 재판》(The Trial of Mary Dugan)을 통해 유성영화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MGM의 간판 여배우로 자리매김하여 "MGM의 여왕", "MGM의 영부인"으로 불렸다.
주요 수상 및 작품
1930년 영화 《이혼녀》(The Divorcee)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38년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로 베네치아 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는 총 다섯 차례(1930년 《이혼녀》, 1930년 《Their Own Desire》, 1931년 《자유의 혼》, 1934년 《배릿 오브 윔폴 스트리트》, 1936년 《로미오와 줄리엣》, 1938년 《마리 앙투아네트》)에 올랐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이혼녀》(1930), 《자유의 혼》(1931), 《배릿 오브 윔폴 스트리트》(1934), 《로미오와 줄리엣》(1936, 줄리엣 역), 《마리 앙투아네트》(1938, 마리 앙투아네트 역), 《바보의 기쁨》(1939), 《여자들》(1939), 《이스케이프》(1940), 《Her Cardboard Lover》(1942) 등이 있다.
은퇴 및 사망
1936년 남편 어빙 솔버그가 사망한 후 큰 충격을 받았으나 MGM의 요청으로 추가 작품에 출연하였다. 1942년 영화 《Her Cardboard Lover》를 마지막으로 연기 활동을 완전히 은퇴하였다. 은퇴한 해에 스키 강사 마틴 어루즈(Martin Arrougé)와 재혼하였으며, 이후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83년 기관지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기타
1960년 2월 8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였다. 오빠 더글러스 시어러는 MGM의 저명한 사운드 디자이너로 아카데미 음향상을 다섯 차례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