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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전역

노르웨이 전역(영어: Norwegian campaign)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인 1940년 4월 9일부터 6월 10일까지, 나치 독일이 베저위붕 작전(Operation Weserübung)을 통해 노르웨이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독일과 연합국(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간의 군사 작전이다. 이 전역은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동시에 침공하는 작전의 일부로 전개되었다.

배경 및 원인

노르웨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중립국이었으나, 여러 전략적 이유로 독일과 연합국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스웨덴산 철광석이 겨울철에는 노르웨이의 나르비크 항구를 통해 독일로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발트해가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나르비크가 독일로 가는 철광석 수송의 핵심 경로였다. 또한 노르웨이의 항구와 공군 기지는 북대서양에서의 해군 및 항공 작전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일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Erich Raeder)는 영국이 노르웨이를 침공할 경우 독일 해군이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철광석 수입을 차단하고 스칸디나비아에서 군사 행동을 취하기 위한 여러 계획을 검토했다. 1940년 2월 알트마르크호 사건(영국 해군이 노르웨이 영해에서 독일군 보조함을 나포한 사건)은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결정을 크게 촉진시켰다.

전개 과정

독일군은 1940년 4월 9일 새벽, 오슬로, 크리스티안산, 베르겐, 트론헤임, 나르비크 등 노르웨이의 주요 항구 도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상륙 작전을 펼쳤다. 같은 날 덴마크도 점령하여 독일 공군이 노르웨이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공군 기지를 확보했다. 노르웨이군은 특히 오슬로 피오르에서의 방어에서 독일 중순양함 블뤼허(Blücher)를 격침시키는 등 일부 저항에 성공했으나, 전반적으로 독일군의 기습에 대응하지 못하고 주요 도시들을 속속 상실했다.

연합국은 노르웨이 북부의 나르비크에서 국지적 승리를 거두었고, 5월 28일에는 나르비크를 탈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5월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연합국은 주요 병력을 프랑스 방어에 투입해야 했고, 결국 노르웨이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6월 초 연합군이 철수하자 노르웨이 정부와 왕실은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여 망명 정부를 수립했다. 노르웨이 본토의 군대는 1940년 6월 10일 공식적으로 항복했다.

결과 및 영향

노르웨이는 총 62일간 독일의 침공에 저항했으며, 이는 소련에 이어 독일의 지상 침공에 두 번째로 오래 버틴 기록이었다. 전역의 결과 나치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여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Norwegen)가 설치되었다. 점령 기간 동안 노르웨이에서는 레지스탕스 운동(밀로르그 등)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독일 해군은 이 전역에서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0척, 잠수함 6척 등 큰 손실을 입었으며, 이는 이후 독일 해군의 작전 능력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노르웨이 전역은 또한 노르웨이의 대규모 상선단이 연합국 편에 서서 활동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전쟁 기간 동안 연합국의 수송 능력에 크게 기여했다. 전역이 끝난 뒤에도 노르웨이 망명군은 영국에서 재건되어 대서양 호송대 작전 및 유럽 전구의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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