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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영화

노르웨이 영화는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노르웨이의 영화 산업 및 작품 전반을 가리킨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에 비해 영화 산업의 도입이 늦었으며, 1904년 오슬로(당시 크리스티아니아)에 첫 번째 영화관이 개관하였고, 1906년에서 1908년 사이에 첫 번째 단편 영화 《Fiskerlivets farer》(어부 생활의 위험)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해당 필름은 소실되어 정확한 제작 연도와 내용이 불확실하다. 1911년 Halfdan Nobel Roede가 제작한 《Fattigdommens forbandelse》(가난의 저주)가 최초의 장편 극영화로 널리 인정받는다.

초기 노르웨이 영화는 덴마크의 에로틱 멜로드라마에 영향을 받았으며, 1920년 Rasmus Breistein의 《Fante-Anne》(집시 안나)를 기점으로 노르웨이 자연과 전원 생활을 소재로 한 '국민적 돌파구(national breakthrough)'가 이루어졌다. 1931년 Tancred Ibsen(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손자)이 첫 유성 영화 《Den store barnedåpen》(대세례)를 발표하였고, 1930년대는 노르웨이 영화의 황금기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의 점령기(1940~1945)에는 독일의 검열과 통제 아래 영화가 제작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최초의 전국적 영화 정책이 수립되었다. 전후에는 전쟁과 저항 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수 제작되었으며, Arne Skouen의 《Ni liv》(아홉 개의 생명, 1957)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1950년대는 영화관의 전성기였으며, Thor Heyerdahl의 다큐멘터리 《Kon-Tiki》(1950)는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여 노르웨이 최초의 오스카 수상작이 되었다.

1960년대에는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영화 관객이 감소하였고, 1970년대에는 사회적 사실주의와 페미니즘 경향의 영화들이 등장하였다. 1980년대는 할리우드와 TV의 공세로 침체기를 겪었으나, Nils Gaup의 《Veiviseren》(길잡이, 1987)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최초의 사미족 영화이기도 하다.

199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자국 영화 지원이 본격화되었고, 1997년에는 Pål Sletaune의 《Budbringeren》과 Erik Skjoldbjærg의 《Insomnia》가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면서 'Norwave'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2001년 노르웨이 영화 기금(Norsk filmfond)이 설립되면서 연간 20~30편의 장편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현대 노르웨이 영화의 대표적 감독으로는 요아킴 트리에(Joachim Trier)가 꼽히며, 그의 '오슬로 3부작'(《Reprise》, 2006; 《Oslo, August 31st》, 2011;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5년 그의 작품 《Sentimental Value》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여 노르웨이 영화 최초로 해당 부문에서 오스카를 획득하였다.

2016년 기준 노르웨이 영화 시장 규모는 약 13억 7,500만 노르웨이 크로네(약 1억 6,000만 달러)이며, 자국 영화 점유율은 23.9%로 북미 영화(66.7%)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2013년 기준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는 2.3회이다. 노르웨이 영화의 주요 시상식으로는 아만다상(Amandaprisen)이 있으며, 매년 하우게순에서 열리는 노르웨이 영화제에서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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