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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조

노광조(盧光稠, Lu Guangchou, ? ~ 910년)는 중국 당나라 말기에서 오대십국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군벌이다. 885년부터 910년 사망할 때까지 건주(虔州, 오늘날의 강서성 감주시 일대)를 통제하였으며, 당나라 멸망 이후 후량(後梁)과 오(吳)나라 양측으로부터 표면적인 승인을 받으며 세력을 유지하였다.

생애

출신과 건주 장악

노광조는 남강(南康, 오늘날의 강서성 남강구) 출신으로,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웅장하고 뛰어난 체격과 외모를 지녔으나 특별한 재능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동향인 담전파(譚全播)에게 비상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당나라 말기 남방 일대가 반란에 휩싸였을 때, 담전파의 권유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담전파를 수령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담전파가 사양하고 노광조에게 수령 자리를 양보하였다. 885년 노광조는 건주를 함락시키고 자사(刺史)를 자칭하였으며, 담전파를 자신의 군사(軍師)로 삼았다.

영토 확장

902년 노광조는 남쪽 정벌에 나서 소주(韶州, 오늘날의 광동성 소관시)를 함락시키고 아들 노연창(盧延昌)에게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이후 조주(潮州)를 공격하였으나 청해군(淸海軍) 유후(留後) 유은(劉隱)에게 격퇴되었다. 유은이 승세를 타고 소주까지 진격해 왔으나, 담전파가 1만 명의 정예군을 매복시켜 청해군을 격파함으로써 소주를 사수하였다. 이 승리에도 담전파는 공로를 다른 장수들에게 양보하여 노광조의 신임을 더욱 얻었다.

후량 및 오나라와의 외교

907년 주전충(朱全忠)이 당나라를 찬탈하고 후량을 건국하자, 노광조는 후량 조정에 임명을 요청하고 선물을 보냈다. 이에 후량 태조 주전충은 건주에 백승군(百勝軍)을 설치하고 노광조를 백승군 방어사 겸 오령개통사(五嶺開通使)로 임명하였다.

909년 홍농군국(훗날의 오나라)이 인접 군벌 위전풍(危全諷)을 격파하고 그 영토를 점령하자, 노광조는 그해 8월 홍농왕 양융연(楊隆演)에게도 복종하는 표문을 올렸다. 이로써 그는 후량과 오나라 양측에 이중으로 복종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였다. 910년 1월, 후량 태조는 그에게 진남군(鎭南軍) 절도사의 직함을 제수하였다.

사망과 후계

910년 연말, 노광조는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담전파에게 지위를 물려주고자 하였으나 담전파는 사양하였다. 노광조가 병사한 후, 아들 노연창이 소주에서 건주로 달려와 장례를 치르고 지위를 계승하였다. 양융연과 후량 태조 양측 모두 이 상속을 승인하였다.

평가

노광조는 당말 오대십국 시기 혼란한 정세 속에서 건주와 소주 2주를 기반으로 25년간 세력을 유지한 군벌이다. 후량과 오나라라는 두 강대 세력 사이에서 양측에 복종하는 실리적 외교로 자립을 도모하였으며, 담전파라는 유능한 참모의 보좌를 받아 영토를 방어하고 확장하였다.


참고: 동명의 현대 인물로는 재미 한인 사회에서 활동한 노광조(노선영) 선교사가 확인되나, 이에 대한 공신력 있는 백과사전적 정보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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