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는 5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51년경)의 신학적 가르침에서 비롯된 기독교의 한 분파를 가리킨다. 동방 교회(Church of the East) 또는 경교(景敎)라고도 불린다.
네스토리우스파의 핵심 교리는 그리스도론(Christology)에 관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라는 두 개의 본성(nature)이 존재하며, 이 두 본성이 하나의 인격(person) 안에서 결합되었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는 '두 본성의 결합'을 강조한 정통 칼케돈 기독교의 입장과 차이가 있으며, 네스토리우스의 반대자들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 두 개의 분리된 인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켜 '신을 낳은 자'(Theotokos)라는 칭호 대신 '그리스도를 낳은 자'(Christotokos)라는 표현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Cyril of Alexandria)와의 신학적 대립을 초래하였고, 431년 에페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에서도 재차 비판받았다. 네스토리우스는 파문된 뒤 추방되었으며, 그의 지지자들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동하여 동방 시리아 교회(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전통을 이어갔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선교 활동을 전개하여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에까지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중국 당나라에는 635년에 전래되어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그 역사를 증언한다. 경교는 당나라 후기 박해를 겪으며 중국 본토에서는 쇠퇴하였으나, 몽골 제국 시기에는 다시 부흥하여 원나라에서 '에르케운(也里可溫)'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의 네스토리우스파 교세는 이슬람의 확장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대부분 소멸하였다.
현대에는 네스토리우스파라는 명칭이 동방 시리아 교회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나, 학계에서는 이 명칭이 역사적으로 적대자들에 의해 붙여진 폄하적 명칭이라는 점이 지적되며, '동방 교회' 또는 '아시리아 동방교회'라는 명칭이 더 정확한 표현으로 간주된다. 현재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이라크 북부, 이란, 시리아 등지에 소수의 신자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